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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사랑

2012.01.13 10:18

물님 조회 수:1418

# 에미서리 공동체의 영원한 지도자, 요란다의 글을 올립니다.

    사랑은 내 삶의 크기만큼 온다는 통찰을 함께 하시기를- 

 

 

신의 사랑

요란다, 1952년 11월 23

 

나는 신의 사랑, 즉 사랑의 주님의 사랑을 주제로 접근할 때 언제나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우리의 왕은 이 세계와 이 땅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과 그의 모든 창조물을 참으로 사랑하여 우리가 오늘 아침에 다룬 상관성의 유형을 회복하여 사랑의 주님이신 그를 믿는 자는 누구나 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사랑의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땅에 사랑이 있을 때, 예를 들어 남녀 사이에 사랑이 있고 그것이 사실이고, 영적인 품성이 있고, 깊이가 있을 때 그 사랑의 상호 연관성은 영원성을 수립합니다. 그 사랑과의 관계에 중심이 잡혀 있을 때 다른 일들은 비록 그것이 필수적인 것이라 해도 또 그것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또 필수적인 일이나 다른 일들을 하는데 아무리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일들은 사랑에 비해서는 이차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의미가 없다고 옆으로 제쳐지는 것이 아니라 알려지고 느껴진 그 품성, 즉 영원성과 사랑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다른 모든 것에 의미를 줍니다. 그 사랑이 없다면 어떤 의미가 거기에 있을까요? 어떤 필요가 있다 해도 오직 사랑만이 그 필요를 채우는 출발점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각자 그리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사랑의 기본적인 유형은 다른 어떤 것을 고려하지 않고도 무엇보다도 귀중하고 사랑의 모든 면에서 가장 귀중한 것입니다: 그것은 신의 사랑, 사랑의 주님의 사랑입니다.  

 

신은 사랑입니다.” 신에게 중심을 두는 것은 사랑입니다; 신의 표현은 사랑입니다; 신의 본성은 사랑입니다. 만일 그리하여 사랑의 실재가 인간의 가슴을 통하여 작용하도록 하게 되면 신과의 관련성이 있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작용은 반드시 무엇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결정화 된 것을 녹일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것은 순종하도록 할 것임에 틀림없고 그것은 거룩한 유형에 맞추어 조정이 되도록 하고 그럼으로써 거룩한 디자인의 섬세한 요인들이 의미를 갖도록 합니다.   

 

나에게 가장 이상한 것 중의 하나는그리고 이것은 하늘의 모든 천사들에게 이상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이것입니다: 인간은 아주 흔히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 조정이 어렵고 저항해야 하는 어떤 것이고 가능하면 피해야 하는 어떤 것이고 그 조정을 하려면 어떻든 괴로움이 있는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처럼 보이는 점입니다. 그러한 태도는 사랑과 진리와 생명에 대한 엄청남 무지를 드러냅니다. 어떤 남자나 여자가 알 수 있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는 삶 속에서 끊임 없이 커지는 사랑의 실재, 신의 사랑이 드러나는데 필연적인 조율 또는 조정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변화의 필요성에 저항하는 대신 그것을 기꺼이 그리고 기쁘게 받아드려야 합니다. 만일 몸체가 거룩한 디자인에 맞추어 변화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몸체가 치유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거룩한 디자인에 따른 통제가 있기 때문에 오는 변화가 있을 때만이 몸체에 치유가 올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만이 마음과 가슴에 치유가 옵니다. 이러한 변화들은 인간이 그렇게 만들지 않는 한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사랑이 어떠한지 말로 전할 적당한 방법이 없습니다. 그것은 불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그것은 사실이고 어떤 이는 불을 두려워합니다. 그것은 태워버리는 불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파괴하기 때문이 아니고, 껴안고 포용하기 때문이며 순종하는 것을 그 자신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며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바꾸며;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줍니다. 사랑에는 아주 많은 섬세한 요인들이 있고 너무 섬세하여 진리 안의 섬세한 디자인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인정할 때만이 사랑의 온전한 아름다움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그 자신 안에서 이러한 실현이 오도록 하기 위하여 어떠한 조정이 일어나야 하는가에 대하여 강의나 책이나 흑판을 통하여 배울 수 없습니다. 일반적인 개념이 주어질 수 있고 원리들을 묘사할 수 있지만 각자 그리고 모두에게 그 개인 안에서만 사랑 그 자체의 영의 작용을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는 어떤 것이 있고그것은 미리 알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고 지적으로 미리 단정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작용 안에서만이 경험될 수 있는 어떤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묘사될 수 없습니다. 이 섬세한 요인들에 있어서 어떤 한 사람에게 사실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 사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각자가 특유의 디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요인들은 본래 우리 모두가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은 인지할 수 있고 인정할 수 있고 알려질 수 있습니다. 그러한 점들은 다소간 묘사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점들은 상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신을 그러한 점들로 제한하고 있는 사람들은 사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지성적으로 미리 결정된 범위를 넘어선 어떤 것이 펼쳐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개인 그 자신에게만 절대적으로 독특한 어떤 것이 작용되어야 합니다. 특성의 다양성을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디자인의 섬세함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있는 어떤 누구도 인간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일반적인 분류입니다모두 인간이지요. 그 다음 우리는 남자와 여자로 나눌 수 있고 누구나 그 중 하나에 속합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사실이 분명한 구분을 짓지 못합니다. 당신과 관련된 거룩한 디자인의 섬세함이 당신의 삶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당신의 사목의 실재에 있어서, 당신 존재의 실재에 있어서, 신이 당신에게 의도하는 바에 있어서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디자인, , 자연의 그러한 섬세한 요소들이 결코 형태를 취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디자인의 섬세함은 바로 신의 정수 또는 신의 가슴에 까지 가 닿습니다. 그것이 우리 주님이시오 왕이신 이를 특징 지웁니다. 만일 우리가 그를 단순히 어느 멀리 떨어져 있는 그래서 다소간 접근할 수 없는 왕이나 주님처럼 생각한다면사랑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사실일 수 있고 또 사실일 테지만그러면 당신은 그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존재의 이 섬세한 요소들, 디자인의 정교함, 그렇게 감동적이고, 모두를 포함하고, 언제나 새롭고 항상 변하면서도 그럼에도 언제나 똑 같은. “항상 변하면서도 언제나 똑 같다라는 말은 인간의 귀에는 역설처럼 들릴 것입니다. 이는 사랑은 언제나 똑 같으나 존재는 결코 같지 않다는 말입니다. 언제나 인간의 말로는 묘사할 수 없이 새로움의 특성이 있고 생동감의 특성이 있습니다. 묘사할 수 없는 이 본질, 이 섬세한 것들이 자신 안에서 움직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만일 누구인가가 기본적인 것들에 너무나 결정화되어 섬세한 것들이 항상 뭉개지고 부차적이거나 그와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면 존재가 참으로 펼쳐질 수 없고 참된 삶, 참된 사랑의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의 주님. 왜 영원함이 실재하는가? 기본적으로 이는 사랑 때문입니다. 누구든 우리의 왕, 사랑의 주님의 안에 중심 잡혀있는 대로의 사랑을 알기 시작하면 그는 영원함 조차도 새로움, 경이로움, 사랑의 기쁨을 고갈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사랑은, 참된 사랑은 결코 늙지 않는 어떤 것입니다. 그것은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공간이나 거리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존재하며 영원히 새롭습니다. 이 항상 하는 새로움 속에 영원한 생명이라고 부르는 영원한 생동감의 비밀을 갖습니다. 사랑의, 신의 사랑의 항상 하는 새로움이 없으면 더 펼쳐지는 생명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결정화 된 것이 지배하게 되고 거룩한 디자인이 아닌 것의 통제가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축복받은 이여, 사랑은 마치 트럭 운송업자가 톤 단위의 많은 량을 배달하듯이 당신이 한꺼번에 받을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흐르고 펼쳐지고 움직이는 어떤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상상하기를 만일 그들이 사랑이 있으면 갑자기 사랑을 톤 단위로 받아서 모든 것이 곧 순식간에 이렇게 되고 저렇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있습니다. 그것은 톤 단위로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삶의 크기로 옵니다. 그것은 계속 표현되어야 하는 어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정교한 디자인, 그 변화하는 유형은 신의 사랑을 아는 능력을 키워주는 어떤 것을 제공합니다. 신은 그의 지혜로서 사랑의 표현을 위해서는 영원함이 주어졌고 사랑을 한꺼번에 전하고 그것이 가버리면 끝나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은 상자나 그릇, 또는 다른 어떤 것에 담아서 보관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움직임 속에서 그 스스로를 드러내는 어떤 것입니다. 그 움직임의 질은 그 사랑이 풀려서 표현되는데 동원된 사랑의 실재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만일 우리가 사랑이 그 길을 가도록 하면 오늘 있는 것은 오늘 드러날 것입니다. 지나간 것과 관련하여 헛된 후회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훈을 잘 배워서 오늘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오늘 던져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의 사랑은 오늘 유용하며 당신에게 유용합니다. 만일 오늘 펼쳐지도록 하지 않으면 기회는 가버립니다. 매 새로운 순간은그리고 우리 앞에 놓인 전체의 영원함, 끝없음은신의 사랑의 끝없이 변하는 경이로움이 드러나는 기회를 가져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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