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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몸에 향유를 붓는 사람

2009.12.16 21:54

물님 조회 수:2173

그리스도의 몸에 향유를 붓는 사람

다석 유영모의 일기 다석일지를 보면 자신의 태어난 날을 시작으로 해서 날짜를 계산하여 기록하고 있다. 몇 년 몇 월 몇 일이라는 평면적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하루를 일생으로 계산하면서 그는 살아갔다. 보통 사람들의 한 생애를 그는 하루라는 단위 속에 살고자 했는 데 그가 사용한 말 가운데 가고 오는 지금 이 순간에 점을 찍으라는 ‘가온 찍기’가 있다. 이 말은 너무나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를 내려 놓지 못하고 미래의 불안에 매여 사는 인간들의 세상에서 오직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자 했던 그의 삶의 내공을 확인해 주는 말이라고 생각 된다.

하느님은 지금 이 순간의 숨을 주시고 있고 지금 이 순간의 시간과 생명을 주고 계신다. 하나님이 캄퓨터의 본체라면 우리는 모니터와 같다. 그런데도 인간의 삶은 자신의 모니터에 이 순간을 나타내지 못하고 과거와 미래라는 환상으로 현재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회개나 거듭남이라는 용어는 그저 그런 삶으로부터 깨어나 지금 여기의 삶을 살아간다는 뜻이다. 지금 이 순간 주시는 은총을 ‘예’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미래에 있을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숨 쉬는 것과 모든 나를 둘러싼 조건들이 은혜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하느님의 모든 은혜는 나에게 주신 ‘오늘’에 있다. 오늘은 나를 재창조 할 수 있는 날이다. 어제까지의 ‘나’가 내 자신이 생각해도 아니올시다 했다면 새롭게 나의 길을 바꿀 수도 있는 기회의 날이기도 하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나를 자학하면서 살아왔다면 오늘 그런 천박한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가롯 유다처럼 자책하면서 목을 매는 인생이 아니라 베드로처럼 돌이켜 다른 길로 갈 수 있다. 어제 98도의 물이었다면 오늘 99도를 지나서 수증기가 될 수 있는 날이다. 이런 면에서 오늘이라는 말은 복음과도 같다. 오늘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나의 살아온 보람과 미래가 바뀌어 질 수 있다. 예수는 이런 법칙을 베다니의 여인을 통해서 전해 주고 있다. 그녀는 값비싼 나드 향유를 가지고 와서 예수의 머리 위에 쏟아 부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분개하면서 말했다.

“왜 이렇게 향유를 낭비하는가? 그걸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도 있을 텐데... ”

그 때 예수는 그녀를 변호하면서 이렇게 말씀했다.

“ 그 녀를 내버려 두라. 너희는 왜 그녀를 힐난하느냐? 그녀는 내개 좋은 일을 하였다. 그녀는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준비하였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않다”

물질적이건 영적이건 가난한 이들을 돕고 치료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마땅한 사명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나를 찾아 오셨을 때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중단하고 그분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만사를 제쳐 두고 주의 몸에 기름과 향유를 부어 드리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생명과 부활의 잔치 상에서 배부름을 얻은 자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진정으로 줄 것이 있을 것이다. 굶주린 자가 어찌 굶주린 자들을 도울 수 있겠는가. 향유를 붓는 마리아를 비난한 자들은 실제로 가난한 이들을 돕지도 않았거니와 도울 수 있는 힘도 없던 인간들 이었다.

마리아는 우리에게 자신의 아래 질서와 상위 질서를 함께 섬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고 있다. 또한 내 안에 게신 그리스도를 섬기고 향유를 붓는 일의 중요성에 대하여 깨우침을 전해 주고 있다.

예수는 그녀에게 큰 축복의 말씀을 전해 주셨다.

“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그녀를 기념하라”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한 것처럼’ 우리 또한 이 지구상에 항상 함께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오늘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우리는 예수의 가르침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자신을 스스로 돕고 운명을 개선해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남을 돕고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길이 나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나타내는 일이다. 내안에서 불러일으키는 선의 동기, 자유의지, 그리고 나의 자발적 노력을 통해서 실천의 삶을 살아야 한다.


  날이 밝는다는 것은 기회의 새벽이 찾아오는 것이다. 이 기회를 잘 붙잡는 것이 지혜의 열쇠다. 신성의 힘을 얻기 위한 출발은 내가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데 있다. 그것이 네 이웃을 ‘네 몸 처럼’ 사랑하라는 뜻이기도 하다. 최하층의 가난한 자들 안에는 권태와 무지, 무관심과 폭력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영혼의 만족과 진리와의 접촉이 결여되어 있다. 영혼의 만족과 진리와의 접촉이 이루어지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 한 궁핍하게 살 수 없다. 우리는 궁핍한 자들을 사랑과 진리 우정으로 어루만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바로 그 힘과 지혜와 사랑을 얻기 위하여 나를 찾아오신 주님의 몸에 아낌없이
향유를 붓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보자. 그리스도 예수를 담을 수 있는 우주적 마음을 가져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