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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삼원색

2010.05.11 11:12

물님 조회 수:2070

영혼의 삼원색

  빛은 본래 색이 없지만 지상에서는 다양한 빛깔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인간도 본래는 빛 그 자체의 존재와 같지만 지상에 올 때는 각자의 빛깔로 나타나게 된다. 각 사람의 의식은 그 사람의 오라 빛깔을 형성한다. 에니어그램에서 다루는 인간의 성격 역시 각자의 에너지 빛깔과 관련이 있다. 장형들은 배꼽을 중심으로 한 레드와 오렌지 칼라 에너지를 사용하고 가슴형은 그린을 중심으로 한 가슴 칼라 에너지를, 머리형은 남색을 중심으로 한 머리의 칼라 에너지를 주로 사용한다.


빛의 삼원색은 빨강 파랑 녹색이다. 이 세 가지 색은 다른 어떤 색을 섞어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 빛의 삼원색을 서로 비추어 합치면 녹색과 파란색은 남색, 빨간색과 파란색은 자홍색, 빨간색과 녹색은 노란색으로 나타난다. 빛의 삼원색을 동시에 비추면 흰색 빛이 나타난다. 이것을 보면 흰색 빛 속에는 빨강 파랑 녹색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빛의 삼원색으로 만들어진 자홍, 남색, 노랑은 빛의 삼원색처럼 다른 색을 섞어서 만들 수 없다. 그래서 색의 삼원색이라고 한다. 이 색의 삼원색을 다시 둘씩 섞으면 빛의 삼원색이 나타난다. 재미있는 것은 빛은 모으면 희어지지만 색은 모으면 검어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빛은 공의 영역이고 색은 물질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물질은 모여 수렴하고 흡수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검은 색이 되고 빛은 반사하고 투과해야 하기 때문에 흰색이 된다. 빛과 색의 속성은 물질 몸과 영혼의 속성을 상징해 준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영혼과 물질에 취한 영혼의 오라가 같을 수 없다. 은혜의 빛이 내 몸에서 제대로 드러날 때 까지 지상에서 우리의 영혼은 연단을 받게 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빛으로 깨어난 영혼이고 그의 빛을 햇빛처럼 받아 살아간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빛의 존재요 빛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의 빛의 발광체가 바로 ‘나’임을 자각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지상의 식물들이 햇빛에서 온 것처럼 이 지상에 보내어진 신성한 빛의 결정체가 바로 ‘나’이다.


  지구 공간에서 신성한 빛의 오라를 강화하고 확장하는 과업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물질을 빛으로 변환하는 사람들이지 우리의 빛을 물질화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 돨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땅의 사람들이 아니라 하늘의 사람들, 곧 빛의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나에게서 죽임과 공격의 에너지 파장이 아니라 생명과 빛의 파장이 발산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몸의 옷을 벗기 전에 이 문제를 주목해야만 한다. 이 우주는 생명의 장엄한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이 우주의 시계에 맞추어 나도 자기 변형의 주기를 따라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7년 주기로 인간은 자기 존재의 변형이 일어나야 하는 데 이에 대한 무지야 말로 인간의 비극이요 죄라고 말한다. 무지가 죄요 자신에 대한 게으름 역시 누구에게도 하소연 할 수 없는 죄이다. 그리스도의 빛과 생명의 부르심에 응답한다는 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자기 훈련과 사랑에 대한 응답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빛, 그리스도의 의식이 충만해 질 수 있도록 도우시는 성령의 소망에 대한 응답이다. 그리스도의 빛은 각 사람에게 은사로 나타난다.



  과일 나무도 종류가 있듯이 성령의 빛이 각 사람에게 나타나는 은사도 다르게 나타난다. 바울은 영적은사에 대해 중요한 가르침을 전해 주고 있다. 하나님께 가는 길, 각자가 자신의 믿음을 성취해 가는 방식은 모두 똑 같은 것이 아니다. 무지개의 빛깔들처럼 다양한 칼라의 길이 있다. 지혜의 말씀을 받은 이도 있고 지식의 말씀을 받은 이 도 있다. 자신의 기질과 소명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믿음 역시 본질은 통하지만 표현하는 삶의 방식은 각기 달랐다. 믿음도 주신 믿음도 있고 내가 믿는 믿음도 있다. 신념의 믿음도 있고 깨달음의 믿음도 있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믿음도 있고 예수에 대해 믿는 믿음도 있다. 신앙생활이란 성장의 단계가 있고 믿음의 정도에 따라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다를 수도 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를 직접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예수님이 “네 손을 내밀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시니, 그때서야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20:28)라고 했다. 예수님을 주로 받은 것은 그가 예수를 따라 다닌 3년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였다.


  영적 통찰력을 얻기 까지 우리는 지식의 말씀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말씀의 밥을 먹는 일에 게으른 사람은 성장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영적 통찰력의 불을 얻을 수 없다. 그리스도의 친구가 되고 살아 있는 진리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성령은 부르고 있다. 이에 응답하는 사람들은 많은 것을 주는 길은 많은 것을 요구 받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고귀한 것을 얻기 위해 그만큼 값비싼 대가를 치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빛을 섬기고 빛으로 자신의 가슴을 고양시키고 진동의 주파수를 높이고 변환시키기 위하여, 인간 세상을 행복하게 하고 영적으로 자유하게 하는 봉사를 위해 자신을 버리고 죽이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 지구가 더 지고한 의식으로 가기 위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기를 원하는 그 분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온전한 헌신과 봉사가 있어야 한다. 이런 의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풍성하게 열리고 지혜와 은사의 꽃비가 내려지게 된다. (고전 12장. 골 2:3 참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