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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6 19:35

도도 조회 수:1945

   텐(10) 에니어그램 - 열려야 산다.

 

                                                          이 병 창( 시인, 진달래교회 목사)

 

에니어그램 도형의 원은 하나를 상징한다. 하나는 숫자의 출발이면서 모든 것을 아우른다. 그러기에 숫자중의 가장 큰 숫자는 하나이다. 하나가 없으면 그 어떤 숫자도 존재할 수 없다. 하나는 나누어지지 않는 온전한 것, 큰 것, 한울, 처음을 나타낸다. 한국기독교에서 신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원이 찌그러지지 앉는 원이 되려면 중심점에서 삼각형 꼭지점의 길이가 같아야 한다. 텐 에니어그램 도형에는 세 개의 삼각형이 그려져 있다. 우리말에서 셋은 선다(정립)에서 나왔다. 솥단지의 다리가 둘일 때는 설 수 없지만 일단 세 개가 되면 서게 된다. 인간이 스스로 선 삶을 살아가려면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만 한다. 그것은 힘과 지혜와 사랑이다. 이 삼위일체가 나에게서 이루어져야 제대로 된 인간의 길을 갈 수 있다.


다섯은 ‘다 섯다’를 뜻하고 여섯은 ‘이어 섬’이다. 도형에는 셋의 삼배수인 아홉 개의 위치가 배치되어 있다. 아홉은 인간 세상의 온갖 다양함을 나타내면서 마지막 완성인 열을 지향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열은 ‘열린다’는 뜻이다. 비유하자면 아홉은 계란 껍질 안에 있지만 병아리가 다 된 상태이다. 그 병아리는 병아리이기는 하지만 아직 병아리로서의 하늘을 만나지 못한 상태이다. 그 것은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같은 상태이다. 텐 에니어그램이 보여주는 바는 인간의 상황이 계란 안의 병아리와 같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계란(에고)은 육신과 나 아닌 것들을 나로 아는 착각이다. 인간의 방황과 고통은 바로 이 문제에 달려 있다. 보이는 세계만을 전부로 아는 6(肉)의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징하는 9의 세계에 도달하여 고치 짓고 나비되는 곤충처럼 마침내 영원의 하늘을 차고 올라야 할 존재가 인간이다.


인간은 이 지구에서 태어났다 죽는 존재가 아니라 왔다 가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지구에 보냄 받은 목적을 알아야 한다. 만물이 자기완성을 향하여 열심히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 또한 그리하여야 할 것이다. 에니어그램은 인간관계에 있어 흔히 나타나는 갈등에 잘 대처하고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아야 할 참된 실재를 향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혜이다.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면 두려움과 온갖 걱정거리에 근거한 생각과 느낌들로 채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상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잡다한 문제들을 참된 실재요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실재는 그 문제들이 아니라 바로 나(얼. I AM) 자신이요,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다.


인간은 선 자리는 각기 달라도 찾아야할 궁극의 목표는 하나이다. 그 것은 자기 자신을 찾는 일이다. 나 아닌 것들을 나로 아는 착각에서 깨어나는 일이다. 일반 에니어그램 도형은 자신의 길을 잃어버리고 거짓 인성으로 살아가는 9가지 유형의 인간 군상을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은 알 껍질 안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그러므로 나를 찾는 다는 것은 9가지 거짓 인성에서 참된 인성으로 깨어나는 것이지 자신이 몇 번 유형임을 아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유형을 알았다면 그 것은 나에게서 나에게로 가는 여행의 출발에 지나지 않는다.


에수는 잃어버린 은돈의 비유와 밀알의 교훈을 통하여 ‘열 (10)’의 비밀을 말씀하고 있다.

“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어버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 여자는 등불을 켜들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그 돈을 찾을 때 까지 구석구석 샅샅이 뒤질 것이다. 그러다가 찾으면 그 여자는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함께 기쁨을 나눌 것이다. 이와 같이 죄인 한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다.” (누가 15:8-10)


인간은 어떤 하나를 잃어 전체적인 중심과 삶의 조화로움을 잃어버렸다. 그 한 잎의 상실은 10이 상징하는 완전성과 더불어 참된 자기 자신의 상실이다. 존재의 중심도 방향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 나가 빠져 버린 얼빠진 삶은 살아있어도 죽은 것과 같다. 그들은 밤이나 낮에도 잠자는 의식권에 있다. 잃버버린 은전을 찾기 위해 등불을 밝혀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나’를 찾기 위해 등불을 밝혀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나를 찾기 위해 나의 발밑과 내 안에 있는 어둠을 살펴보아야 한다. 나의 은전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내 의식의 모든 영역들을 살펴보고 청소하는 대 작업이 있어야 한다. 회개란 공간 이동이 아니라 바로 자신을 찾는 영적 대청소가 시작되는 것이다. 나의 두려움과 억압과 분노와 고통의 뿌리가 무엇인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독일의 요한 타울러는 “우리 삶의 위기에 하나님께서는 몸소 우리 집에 찾아오시고 은전을 찾으신다. 그리고 그분은 은전을 찾으려고 가구를 옮기고 의자를 책상위에 올리는 여인처럼 행동하신다.” 고 말했다.


전라도 화순 땅에는 성인으로 추앙받는 이세종선생의 기도처가 있는 개천산(開天山)이 있다. 그 기도처는 산 중턱에 있는 데 산 아래 마을 이름은 등광리 (登光里)였다. 빛을 향해 올라가면 하늘이 열린다는 그 뜻이 의미가 깊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불을 밝혀 나의 하늘을 열어보자. 잃어버린 하나를 찾아 열을 완성하는 복된 길을 걸어 가보자.

 

  <석실 예배당에서 바라본 터어키  가빠도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