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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에 대하여

2009.02.16 08:21

도도 조회 수:1981

    의심- 죽음을 불러오는 인류의 병


                                                                                                       이 병 창 (시인, 진달래교회 목사)

 

인간의 삶을 짓누르고 성격의 밑바탕이 되는 것은 두려움이다. 인간은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앞날에 대한 염려와 근심이 있다. 인간관계 속에서 사랑을 갈구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이 떠나가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있다. 또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소유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인간의식의 밑바탕에 있는 두려움은 각자에게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나게 된다. 분노와 걱정과 의심, 질투와 선망과 외로움, 일중독들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인간의 행태 밑바닥에는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


성서가 말씀하는 핵심은 인간이란 인생을 두려움으로 살아야할 존재가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야 할 존재라는 사실이다. 두려움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첫 번째 특징은 육신을 ‘나’로 알고 있고 나 아닌 것들을 나로 착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름이나 직업에서부터 자신의 생각과 느낌과 하나하나의 행동이 자기 자신으로 동일시하면서 살아간다. 두 번째 특징은 생명의 주권이 자기 자신에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영원히 살 것처럼 날 뛴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쉬고 있는 숨을 자기 마음대로 쉴 수 있는 줄로 착각한다.


인생이 지구 공간에 오는 것과 가는 것은 인간이 정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그럴 권한이 없다. 한번 쉬는 호흡도 내가 하는 일이 아니다. 호흡의 결정권이 나에게 있다면 죽을 인간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때가 되면 하나님은 나의 호흡을 거두신다. 지상에서 내 생명의 기한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의 공간과 시간을 제대로 살아내야만 할 책임이 있다. 만물은 자기 에게 주어진 공간에서 자신의 완성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완성을 위하여, 지금 나에게서 사랑과 행복의 에너지가 나가도록 해야 할 에너지를 사람들은 화를 내고 걱정과 의심하고 질투하는데 헛되이 탕진하고 있다. 인생의 불행은 이런 패턴으로 살아가는 데 있다. 이렇게 스스로 자신을 조이고 살아가는 사람을 죄인이라고 한다. 그들은 자신을 고통주고 괴롭히다 못해 자신의 주위 사람들을 공격한다.


베드로 사도는 에니어그램으로 풀어 보면 공포와 싸우는 6번 유형으로 본다. 그분은 공포적 상황에서 돌발적으로 공포의 대상을 향하여 치고 나가는 모습을 성서의 여러 곳에서 보여 주고 있다. 그는 물위를 걸어오는 예수께 “ 주님, 정말 주님이시면 저더러 물위로 걸어 오라고 하십시오. ” 말하자 주님은 “ 걸어 오너라”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순간 물위를 몇발자국 걸어갔지만 물결이 높이 이는 것을 보고 무서움에 휩싸이는 순간 빠지고 말았다. 이에 놀란 베드로는 “살려 주십시오 주님!” 외쳤다. 예수는 그를 붙들며 “믿음이 적은 자여. 왜 나를 의심하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이 이야기는 인생의 바다에서 일어나는 파도에 일희일비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베드로가 예수를 바라보고 그분의 말씀을 들었을 때는 물위를 걸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파도를 바라보고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될 때 그는 두려움에 빠지게 되고 결국 물속에 빠지게 되었다. 인생의 무대에서 허우적대지 않고 멋있게 사는 길은 믿음의 문제에 달려 있다는 것을 베드로는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믿음의 토대에 바로 서있을 때 소망이 있고 사랑의 에너지로 살 수 있다.(고전 13:13참조) 그러나 믿음이 아닌 두려움의 기초 위에 서있게 될 때 그는 절망과 자기 자학 속에서 살아 갈수 밖에 없다. 예수는 밀알의 교훈을 통하여 인간은 지구라는 밭에 뿌려지는 신의 씨앗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씨앗 속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으니 좋은 밭에 씨앗을 뿌리고 열매와 그늘이 풍성해지도록 자신을 잘 보살펴야 함을 말씀하셨다. 만일 밀알이 땅에 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또 자기 껍질 밖으로 나가기를 두려워하여 거부한다면 그에게는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 삶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새로운 삶, 새로운 인간관계를 끊임없이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기 성장이 일어 날 수 없다. 그는 자기 껍질 안에 있을 때만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껍질은 보호막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두려움의 알 껍질 안에만 있을 때 그에게 삶의 기쁨은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인생의 무덤이다. 실체도 없는 두려움에 갇혀서 무덤 속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신의 성장을 스스로 막고 사는 사람은 남의 성장을 가로막는 폭력을 행사한다. 인간은 한 알의 밀알처럼 무한한 가능체로서 지구에 보냄은 받았다. 그 가능성을 얼마나 활용하느냐하는 것은 각자의 믿음에 달려있다. 인간은 의심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다. 즉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있다 .그런 인간이 어찌 남인 들 믿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믿는다는 말은 모든 것을 내맡기고 살아가는 지혜에 귀의한다는 뜻이다. 귀의란 나에게 오는 모든 것과 싸우지 않고 허락한다는 의미이다(Letting Go). 이 지혜를 얻을 때 삶이 아름다워지고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 의심은 죽음을 불러오는 인류의 병이다. 의심 때문에 나와 너를 잃어버리고 진리와 자유와 우리가 누려야할 기쁨을 잃어버리고 있다. 그 의심은 바로 자신의 깊은 두려움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통찰해야만 한다.

 

    <의심의 안개 걷히고 근심의 구름 없는 곳, 기쁘고 참된 평화가 여기만 있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