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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동과 빛깔

2014.03.23 20:50

물님 조회 수:938

인간을 둘러싼 존재계의 본질 - 파동과 빛깔

 

빛깔은 보이지 않는 세계가 공간 속에 나타날 때 나타난다. 만물은 빛깔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로고스의 세계를 반영한다. 그러기에 자연은 섭리대로 성장의 때를 따라서 자신의 빛깔을 드러내며 살아가고 있다. 봄날에 모내기한 논은 연록빛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진초록으로 변해간다. 가을이 오면 노란빛깔이 서서히 나타나면서 점차 황금빛으로 변해간다. 때를 따라 변해가는 들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계절을 가늠하고 수확의 때를 알게 된다.

 

 

인간의 타락이란 자연의 질서대로 살아가고 있지 않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자연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연은 기계적 섭리대로 살아가고 있고 인간은 긍정이든 부정이든 의지가 있기에 의도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빛깔은 그에 해당하는 의식을 동반한다. 어떤 특정한 빛깔이 대두되는 것은 그 시점의 과제와 풀어져야할 의식이 무엇인지를 암시한다.

 

 

인간은 의식과 초의식적 영역에서 색깔과 빛을 지각한다. 진화의 여정에서 영혼을 인도하도록 돕는 것이 빛깔이고, 인간을 가장 깊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열쇠와 같은 것으로 비유되고 있다. 빛깔은 파동이며 에너지이다. 과학적인 측면에서 보면 전기와 전파의 가장 긴 파장에서부터 감마선이나 우주선과 같은 가장 짧은 파장까지 펼쳐져 있는 전자기 스펙트럼의 맥락에서 이해될 것이다.

 

 

빛깔은 인간의 감각과 감성을 자극한다. 빛깔에 대한 감성은 국가와 민족, 개개인의 경험과 집단에 따라서 차이가 있고 하나의 빛깔이 보내는 연상 이미지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빛깔은 긍정적 부정적 메시지를 보여주고, 특히 각 사람의 심적 영적 상태에 따라서 나타나는 오라의 빛깔도 있다. 빛깔은 자연이 자신을 표현하는 언어이다. 또한 우주에 숨겨진 질서의 한 부분으로써 우주의 언어이기도 하다.

빛깔들이 나타나는 순서는 빛깔들의 서로 다른 독특한 성질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1차크라의 칼라인 레드는 파장이 가장 느린 적외선 쪽 끝에서 최초로 나타나는 색이다. 레드는 모든 색 중에서 가장 긴 파장과 가장 느린 진동수를 가지고 있다. 레드는 천천히 밀려오는 바다의 밀물에 비유되는 색깔이다. 레드는 모든 색 중에서 가장 많은 활력을 주고 따뜻하다. 레드는 각성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7차크라의 칼라인 바이올렛은 에너지가 자외선 쪽 영역으로 넘어가기 전에 가시광선 중에서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색깔로 가장 짧은 파장과 가장 높은 진동수를 지니고 있다. 바이올렛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영성의 파장이다. 그러기에 서늘하고 흥분을 누그러뜨리는 작용을 하는 색깔이다.

 

 

색깔은 색깔의 특성이나 심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많이 있지만 색깔의 오묘함은 인간이 다양한 차원에서 경험하는 의식을 리딩할 수 있는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영어 표현에서 우울하다(feel blue), 분노하다(see red), 얼굴이 창백할 정도로 몹시 부러워하다(green with envy), 기력이 왕성하다(in the pink)라고 사용되어지는 것을 보면 인간의 내면과 빛깔의 언어는 매우 밀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색깔들 간에는 한 색깔이 갖고 있는 의미가 다른 색깔과 중첩되어 숨어있기도 한다. 빨강, 노랑, 파랑이라는 세 가지 색이 1차색, 2차색, 3차색으로 변환 중첩되면서 색깔들 간에 미묘한 차이와 움직임, 상관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인간의 전기 에너지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빛깔과 인간의식의 상관관계에 대한 보다 깊은 연구와 체험이 필요하다.

 

 

빛은 어둠의 자식이다. 그러기에 모든 빛깔의 배후에는 어둠이 있다. 우주는 빛과 어둠으로 되어 있다. 그러기에 어둠은 버릴 수도 없고 버리는 것도 아니다. 어둠처럼 알 수 없는 미래가 지금 여기로 다가오듯이 삶은 어둠을 통해 성장한다. 인간의 깊은 어둠, 에고를 통해서 인간 의식의 창조 작업이 일어난다. 그러기에 내가 모르는 것(어둠)을 신뢰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을 배울 수 없다.

 

 

인간으로 태어나 경험하는 빛은 숙명처럼 어둠의 요소가 깃들어 있다. 우리는 지상에서 어둠을 통하여 내면의 빛을 자각하게 된다. 굶주림을 통하여 밥의 고마움을 알게 되고 돈 없는 어려움을 통하여 돈의 가치를 알게 된다. 질병의 고통을 통하여 건강의 중요성을 자각하게 된다.

 

창조력은 어둠을 응시하고 그 어둠으로 발을 내 딛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그러기에 하늘은 사랑하는 자에게 어둠을 선물한다. 눈앞이 캄캄한 인생의 고통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어둠에 대한 이해와 용기를 갖게 된다. 용기가 커갈수록 인생의 문제는 어둠이 문제가 아니라 그 어둠에 대한 각자의 태도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어둠에 눌리면 자기 불신과 의심에 시달리게 된다. 불신의 에너지가 두뇌에 올라가면 편집증(대뇌)에 시달리게 되고 사실은 환상(소뇌)으로 둔갑하게 된다. 그리고 온갖 의심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자신과 삶에 대한 신뢰가 없는 사람들의 무지몽매한 어둠의 선택은 스스로 고통을 불러들이게 하는 원인이 된다. 거절해야 할 때 거절하고 받아 들여야 할 때 받아들이고 기다려야 할 때 기다릴 수 있는 지혜의 빛을 얻을 때까지 수업료를 내게 된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때 삶의 조화가 깨어지고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그 고통과 방황을 통하여 자신의 소명을 깨닫게 된다면 그는 지상에서의 학점을 따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지상에 보내어진 자신의 소명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하늘은 나의 소명을 거두어 간다.

 

 

지구에서 인간이 감당해야할 과제 가운데는 직업적 사명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경험해야 할 존재의 사명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에너지적 진동과 오라의 정화요 고차원으로의 의식변형이다. 일체의 존재들은 진동하고 있다. 그 진동은 파장인데 그 파장은 빛깔로 나타나고 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은 빛이다. 하나의 햇빛 때문에 수많은 종류의 식물들이 자라나고 있다. 빛은 그 자체로서는 색깔이 없지만 공간 안에서의 반사 때문에 무수한 빛깔을 가지고 나타난다. 그리고 빛깔에 따라 독특한 에너지 파장과 특성을 지니고 있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 (마젠타, 실버, 골드)의 단계별 칼라는 각자의 진동을 가지고 있다. 자극적인 빨강은 주파수가 느리지만 파장이 짧고 진동수가 많은 보라는 진정의 효과를 나타낸다. 즉 에너지의 특성이 있다. 빛깔은 인간의 공통 언어이며 우주적 언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기에 각자가 반응하는 빛깔은 그 자신의 의식을 반영한다. 어둠이 빛깔을 형성 시킬 수 없는 것처럼 어둠에 속한 의식권의 사람들은 자기 존중감, 존재에 대한 자각,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사랑을 가질 수 없다. 그들은 자기 학대와 타인에 대한 염치없는 공격으로 삶의 에너지를 고갈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