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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지기를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에 서게 되면 자연스럽게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거스틴은 시간을 하나님의 피조물로 통찰했다. 시간에 매이는 것이나 돈에 매여 사는 것 역시 매 한가지라는 통찰이다. 창세기에는 우리가 시간이라고 여기는 것에 대한 시작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이 명령하셨다. ‘저 창공에 하늘을 밝히는 여러 가지 빛이 생겨나라. 그 빛이 밤과 낮을 나누어라. 그 여러 가지 빛이 밤과 낮을 구분하는 표적이 되게 하여라. 또한 그 여러 가지 빛을 따라 나날과 햇수를 계산하게 하여라. 또 때마다 절기를 지키는 표로 삼게 하여라” (1:14).

 

 

농경사회에서는 절기를 기억할 수 있었지만 현대 산업 사회에서는 모두 철을 잃어버렸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철부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둘러보면 자신의 생명이 영원한 것인 양 착각하다가 중병에 걸린 뒤에야 후회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인간의 생명이란 촛불과 같은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초가 조금 크냐 작냐하는 차이가 있을 수있지만 초가 다 타면 모든 촛불은 꺼지기 마련이다. 육체의 기한 역시 누구나 예외 없이 끝나게 되어 있다는 이 평범한 사실을 사람들은 애써서 외면하고 있다.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한 세기 안에는 모두가 사라질 것이다. 아무리 유능하고 권력과 재물이 많을 지라도 죽음을 목전에 두게 되면 그 모든 것이 다 덧없다는 것을 절감한다. 죽음 앞에서 초라해지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죽음 앞에서 후회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후회하며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가

 

 

한번 지나가면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것이 시간이다. 그 무엇을 주고도 시간을 무르거나 바꿀 수 없다. 그래서 시간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 그런데도 얼마나 많은 시간 낭비가 우리 삶에서 이루어지고 잇는가.

괴테의 파우스트는 이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학문의 세계에 전념하느라 연애 한번 못해보고 청춘시절을 다 놓쳐버린 노() 학자 파우스트는 젊음을 다시 한 번 얻고 싶다는 그 소원 하나 때문에 자기 영혼을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팔았다. 잃어버린 젊음을 다시 찾기 위하여 영혼까지 걸고 악마와 거래 한 것이다. 문제는 파우스트가 시간의 주인은 악마가 아니라 하나님인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속사람의 영원한 젊음을 찾으려하지 않고 육체의 젊음만을 찾으려 하는 시도가 얼마나 무망한 것임을 그는 몰랐던 것이다. 파우스트는 또 다른 형태의 인생사기를 악마에게 당하고 있고 자기 자신을 기만하고 있다. 결국 시간으로 부터의 궁극적 구원은 악마에게서 얻을 수 없다는 것을 파우스트는 보여주고 있다.

 

 

믿음을 갖는 다는 것은 시간의 주인이 하나님이며 시간의 구원자인신 분이 하나님인 것을 아는 것이다. 육체의 옷은 낡아지나 나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는 경험의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옷이 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면 그는 살고 죽는 것으로부터 자유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생사로부터 벗어나는 믿음에 들어 설 때 지상의 시간으로부터 구원 받은 기쁨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우리는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 겉 사람은 시들어가지만 우리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과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며 오래 가지도 않습니다. 이 짧은 고통은 영원히 다함없는 영광을 가져올 것입니다.” (고후 4: 16-17)

시편기자도 사도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하고 있다.

그 옛날 주께서 지으신 땅, 주께서 손수 빚으신 하늘, 그것들은 비록 사라질지라도 주님은 영원히 계시며 그것들은 옷같이 낡아 새것으로 바꾸시면 바뀔지라도 주께서는 똑 같으시리이다. 해가 가도 스러지는 법이 없으리이다. 우리 자손들은 주님의 보살핌으로 평화를 누리고 그 후손들도 안전하리이다. 아무 걱정 없으리이다. ” (시편 102:25-28)

 

 

인간의 평화는 내 안에서 작동되는 걱정과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가능하다. 아무리 밖의 물질적 조건이 좋아도 홀로 있을 수 있는 힘이 없고 두려움에 노예가 되어 있다면 그는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없다. 텐에니어그램이 시간과 공간과 인간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시종일관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구라는 공간에서, 그 공간을 지배하는 3차원의 시간관(크로노스의 시간)으로부터 탈출하지 않는 한 인간은 두려움의 노예생활을 벗어날 수 없다. 애벌레의 시간에서 그리스도의 나비 시간으로 벗어나는 믿음의 도약이 일어나는 새해를 맞이하자. 악한 세대 속에서 세월을 아끼고, 자신의 속사람을 잘 돌아보는 지혜를 구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