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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5


에스더 5장 한 사람이 세상을 구한다


숨 이병창


에스더서의 전반부(1-4장)는 하만의 흉계에 의해 몰살 위기에 처한 유대인들의 상황이 소개되고 있다. 후반부(5-10장)는 반전된 상황이 펼쳐지면서 하만이 처형되게 된다. 5장은 왕 앞에 부름 없이 나아가는 행동은 국가의 법이 엄금하고 있는 사항이지만 목숨을 건 에스더의 담대한 결단은 오히려 왕의 은총을 받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1-4절). 5장에서 두드러지는 사항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이루어주겠다는 왕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을 곧바로 말하지 않고 거듭해서 자신이 베푸는 잔치에 왕과 하만이 참석해 주기만을 요구했다는 데 있다.

자신의 요구를 곧바로 말하지 않고 잔치를 먼저 제안한 것은 왕의 환심을 더욱 사게 했고 에스더의 소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왕의 호기심을 자극하게 되었다. 에스더는 11개월이나 남겨져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성급하게 밀어붙이지 않고 치밀한 준비를 한 것으로 미루어진다. 에스더는 치밀함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첫 번째 잔치에서 왕은 다시 소원을 말하라고 했다.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에스더는 이튿날의 잔치에도 왕과 하만이 참석해 주도록 간청하면서, 그렇게 해 준다면 자신의 소원을 그때 말하겠노라고 했다(7-8절). 어쩌면 왕의 입장에서는 왕비와 오붓한 시간을 가지고자 했을 텐데 하만이 끼어드는 것에 대해 별로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 에스더의 담대함


에스더는 왕이 3번이나 약속하게 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삼시세판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세 번의 약속은 어떤 상황이든지 번복할 수 없는 횟수이다. 3은 변화의 숫자이다. 변화의 임계점까지 차오를 때까지 에스더는 죽음을 각오하고 기다렸다. 원수인 하만이 왕의 약속을 직접 들을 수 있고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것을 보면 에스더가 얼마나 신중하고 지혜로운 여인인가를 알 수 있다.

에스더는 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제물이 되기를 원했고 그에 따른 헌신의 결단을 했다. 인간의 변화는 마음을 먹고 결단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것이 목숨을 건 결단일 때 담대한 용기가 분출되게 된다. 그러나 용기만 갖고 일이 성사되는 것은 아니다. 용기에 지혜가 더해져야 한다. 에스더는 죽음을 각오한 자신의 결단을 귀한 결실로 맺어지게 하기 위해서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노아가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드는 인내를 보여주는 것처럼 철천지 원수인 하만을 잔치판에 불러들여 그를 안심시키고 기고만장하게 하였다. 그것은 하만을 가장 높은 곳에 올려놓고 추락하게 하는 전략이었다.

만약 에스더가 첫 번째 왕의 요구에 응답했다면 하만을 맨바닥에서 넘어지게 하는 정도의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 번에 걸친 왕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고자 세웠던 23미터 높이에서 떨어지게 하는 효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바로 이점이 우리가 에스더로부터 배워야 할 지혜이다.

성서는 우리에게 지혜를 전해주는 교과서이다. 성서의 역사와 인물들 속에서 우리는 지혜를 건져내야 한다. 영악한 세상 사람들을 뛰어넘는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비둘기같이 순결하고 뱀같이 지혜로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순수하지만 맹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더 치열하게 노력해야 하고 담대하게 도전해야 하고 보다 세상을 밝고 이롭게 해야 한다.


@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나’ 한 사람에게 달려 있다


왕후의 잔치에 두 번이나 초대를 받은 하만은 즐거움을 억제할 수 없었다(9절). 그러나 집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모르드개가 여전히 자신에게 절하지 않는 것에 대해 크게 분노하였다. 그는 유대인 몰살 날인 12월 13일까지 기다리지 않고 모르드개를 당장 다음 날 처형할 것을 결심하고 나무 기둥을 세우도록 했다(10-14절). 하만은 최고 실권자임에도 그 사실을 인정해 주지 않는 모르드개 한 사람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고 파멸의 길을 가게 되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이에게 자신의 위압적인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게 된 것이다.


‘그 날 하만은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궁중을 나섰다. 그러다 궁궐의 대문에서 모르드개를 보는 순간 속마음이 뒤집혀 버렸다. 모르드개는 대궐 문에 앉아 있다가 하만을 보고서도 일어서기는커녕 몸을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9절)


권력자들이 무서워하는 사람은 모드드개처럼 권력 앞에 절하지 않는 사람이다. 권력자들은 그들을 죽이려고 별짓을 다 한다. 권력은 국민을 위해서 사용해야 함에도 선량한 사람들을 죽이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긴급조치, 계엄령 등 온갖 악법을 동원해서 국민을 탄압하는 하만의 공포 역사를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그 세력들의 도전을 받고 있다.

하만이라는 인물은 한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자기 권력으로 통제하고 사유화하는 집단의 이름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에서는 그동안의 검찰 집단이고 여야 가릴 것 없이 그 집단과 결탁된 정치세력이다. 에스더서는 이런 세럭을 뒤집기 위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가를 오늘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역사는 아무리 험악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악의 세력이 기고만장하여 날뛴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도구로써 사용되어지기를 원하는 모르드개와 에스더 같은 믿음의 사람들에 의해서 반전되어 왔다. 가까운 날에 우리는, 하만의 세력들이 세운 나무 기둥 위에 그들이 매달리는 반전의 드라마를 보게 될 것이다.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독립운동으로, 만세운동으로, 촛불로 지켜온 대한민국을 하나님은 결코 버리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반전의 역사를 우리 속에서 이미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만의 편에 서지 않고 모르드개가 되고 에스더가 되는 데 있다. 민주사회는 영웅의 시대가 아니라 시민 사회의 시대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역사는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고 완결된다. 하만의 세력들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들의 종말은 가까이 왔다.


ㅁ, ㅂ, ㅍ

        -오북환 장로님을 추모하며


저녁 9시만 되면

땡전 뉴스가 세상을 희롱할 때

나는 견디다 못해

산에 계신 선생님을 찾아갔다.

나는 숨만 가쁘고

작은 방안에는 침묵만이 흘러갔다.


   “ㅁ, ㅂ, ㅍ 으로 풀으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단단한 떡을 입안에

    물고 있으면 불려지고

    불려지면 풀어지겠지요.”

그때 내 절망의 구름 사이로

빛이 보였다.

   “단단한 떡을 성질대로 깨물어버리면

    이빨 상하고 떡은 떡대로

    못 먹게 되겠지요.

    입안에 물고만 있으면 반드시 풀어집니다.”


아하, 이거였구나

권력의 하루살이들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로구나

나는 큰절 올리고 산을 내려왔다.

세상사 ㅁ, ㅂ, ㅍ.

ㅁ, ㅂ, ㅍ.

그때 앞산이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 이병창 시집 <메리 붓다마스> p.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