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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호가들 위한 교양서 봇물
17세기 거장 렘브란트의 말년 자화상. 죽기 1년 전인 1668년 그린 것이다. 고대 그리스 화가 제욱시스를 빗대어 그린 작품으로 보는 견해들이 많다.
17세기 거장 렘브란트의 말년 자화상. 죽기 1년 전인 1668년 그린 것이다. 고대 그리스 화가 제욱시스를 빗대어 그린 작품으로 보는 견해들이 많다.
거장은 어둠 속에서 허옇게 빛나는 얼굴을 실룩거리며 웃는다. 덕지덕지 처바르고 짓이겨진 물감 덩이의 흔적들로 빚어진 얼굴이다. 삶의 풍상을 안은 주름살과 거친 살집들로 메워진 표정이 구슬프고도 섬뜩하다. 그는 왜 웃고 있는 걸까.

이 그림은 미술사의 성자로 추앙받는 네덜란드 거장 렘브란트(1606~1668)가 죽기 1년 전 그린 말년 자화상. 수수께끼 같은 미소로 유명한 이 걸작은 ‘제욱시스’란 별칭도 붙었다. 제욱시스는 고대 그리스의 전설적인 화가. 얼굴과 몸에 주름 가득한 노파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자신을 그려달라는 주문을 하자 미친 듯 웃음을 터뜨리다 숨이 넘어가버린 이였다.

미술사가 이연식씨는 신간 <예술가의 나이듦에 대하여>(플루토)에서 그림 속 렘브란트는 노년의 역설 때문에 웃고 있었으리라는 짐작을 내놓는다. ‘빛나는 역량도 탁월한 성취도 안락을 주지 않으며, 분투할수록 수렁에 빠진다는 역설’. 그래서 ‘역설을 깨닫게 한 고통과 허무 속으로’ 물러서는 그의 얼굴은 전설 속의 노파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파격과 일탈을 감행한 미술 거장들의 노년 작품세계를 뜯어본 그의 책에서는 악평을 받거나 몰락하면서도 황혼기 작풍의 변신을 감행한 예술 대가들의 복잡한 속내를 만나게 된다.

미술을 즐기는 행위의 두 축은 감상과 책읽기다. 세상 곳곳의 작품 체험을 압축해 전해주는 교양서들이 새봄 잇따라 나와 미술이 배움과 발견의 보고임을 일러준다. <예술가의 나이듦…>과 더불어 볼만한 책은 미술평론가 이주헌씨의 신간 <리더의 명화수업>(아트북스)이다. 서양 미술사의 으뜸 장르인 역사화에 자주 등장하는 주요 위인, 영웅들의 리더십을 놓고 통찰하는 ‘눈’, 경청하는 ‘귀’, 소통하는 ‘가슴’의 세가지 영역으로 엮어 그림의 도상을 풀이한다. 미술사 연구 성과를 갈무리한 책들도 있다. 인도에서 건너간 중국 불상의 2천여년 역사(한나라~청나라대)를 한반도 불상과의 연관관계 속에서 펼쳐낸 배재호 교수(용인대)의 <중국 불상의 세계>(경인문화사)는 불교미술사 이해에 요긴하다. 90년대 이후 관 주도 미술육성책과 대안공간, 도심공간 전시 등으로 활로를 뚫어나간 동아시아 한중일 현대미술의 대중화 전략, 대안 모델 등을 정리한 미술이론가 고동연씨의 역저 <소프트파워에서 굿즈까지>(다할미디어)는 보기 드문 동아시아 현대미술사 길잡이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단순 교양, 에세이 차원을 넘어 저자들의 미술사 편력과 다층적인 지식 내공을 누릴 수 있다는 게 공통된 특징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34732.html?_ns=r3#csidxe7c961f2e778007a610d112f5b9b62f onebyone.gif?action_id=e7c961f2e778007a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