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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감정수업

2013.11.13 08:23

물님 조회 수:1169

@ 서양의 노자라고 할만한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내 젊은 날의 보약이었다.  밑바닥의 삶에서 건져올린 그의 통찰은 어떤 시보다도 무겁고 깊게 나에게 각인되어 있다.  말많은 강신주님이 에티카를 들어  들여다본 인간의 감정에 대한 수업은  잠시 바쁜 걸음을 멈추고 들어야  할 주제라고 생각한다. 뫔 가족들이  감정수업을 읽고 나서  원전인 '에티카'를  접해 보는 행운을 만날 수 있기를 소원한다.                -  물- 
 
 
 
철학자 강신주가 읽어주는 욕망의 인문학.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와 그의 저서 『에티카』는 철학사에서 많은 논란과 동시에 흠모의 대상이다. 이성 중심의 서양 철학 전통에서 ‘감정의 철학자’로 불리게 되는 혁명적인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강신주 박사는 스피노자가 정의한 48가지 감정을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하나하나 세심하게 설명해 준다.

우리의 현실은 이성보다 감정에 좌우되는 존재다. 하지만 나의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 감정이 어떤 성격의 것인지 모를 때가 많다. 내 옆에 있는 남자에 대한 끌림이 단순히 좋은 사람에 대한 호감일까, 아니면 사랑의 시작일까? 지금 연인에 대한 나의 감정은 연민일까, 진짜 사랑일까? 나의 선택은 올바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소심함 때문에 선택한 실수일까?

우리는 나도 모르는 감정에 이끌려 잘못된 판단을 할 때도 있다.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나의 감정을 분명히 파악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감정의 종류와 성격에 대해 인문학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감정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이유는 감정의 긍정을 통해 ‘살아 있는 나’를 위한 윤리학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강신주는 스피노자의 프리즘을 통해 인간 감정의 참모습을 찾아낸다.

머리말
프롤로그: ‘감정의 윤리학자’ 스피노자

1부
1 비루함,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노예의식
『무무』, 이반 투르게네프
2 자긍심, 사랑이 만드는 아름다운 기적
『정체성』, 밀란 쿤데라
3 경탄, 사랑이라는 감정의 바로미터
『오래오래』, 에릭 오르세나
4 경쟁심, 서글프기만 한 사랑의 변주곡
『술라』, 토니 모리슨
5 야심,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약점
『벨아미』, 기 드 모파상
6 사랑, 자신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힘
『동풍서풍』, 펄 벅
7 대담함, 나약한 사람을 용사로 만드는 비밀
『1984』, 조지 오웰
8 탐욕, 사랑마저 집어삼키는 괴물
『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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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티카』와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
“감정을 다스리려는 칸트의 이성이 아니라
감정을 긍정하고 지혜롭게 발휘하는 스피노자의 이성이 필요하다“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와 그의 저서 『에티카』는 철학사에서 많은 논란과 동시에 흠모의 대상이다. 이성 중심의 서양 철학 전통에서 ‘감정의 철학자’로 불리게 되는 혁명적인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강신주 박사는 스피노자가 정의한 48가지 감정을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하나하나 세심하게 설명해 준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성적인 존재일까? 이것은 감정의 강력함에 직면했던 인간의 절망스러운 소망에 지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한 번이라도 자신과 타인을 제대로 응시했다면, 누구나 인간이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이성은 감정보다 먼저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심지어 이성은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 발명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성이 감정을 적대시한다면 언젠가 감정의 참혹한 복수 앞에서 자신의 무기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감정에 무조건적으로 적대적이었던 칸트의 이성과는 다른 종류의 이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감정의 쓰나미를 무모하게 막아서려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을 긍정하고 지혜롭게 발휘하는 스피노자의 이성 말이다.
―「프롤로그」에서

★ 철학자가 풀어주는 48가지 욕망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인간의 이성에서 윤리학을 시작하려고 할 때,
스피노자는 자신의 윤리학을 욕망에서부터 출발했다.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지닌 혁명성이다.“


우리의 현실은 이성보다 감정에 좌우되는 존재다. 하지만 나의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 감정이 어떤 성격의 것인지 모를 때가 많다. 내 옆에 있는 남자에 대한 끌림이 단순히 좋은 사람에 대한 호감일까, 아니면 사랑의 시작일까? 지금 연인에 대한 나의 감정은 연민일까, 진짜 사랑일까? 나의 선택은 올바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소심함 때문에 선택한 실수일까? ‘대담함’이란 감정은 용기와 동의어일까? 나의 친구가 좋아하는 사람을 나도 좋아하는 것은 진심일까, 아니면 경쟁심의 발로일까? 우리는 나도 모르는 감정에 이끌려 잘못된 판단을 할 때도 있다.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나의 감정을 분명히 파악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감정의 종류와 성격에 대해 인문학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개개인의 삶보다는 사회질서를 우선시하는 대부분의 윤리학자들이 스피노자를 그토록 비난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그들은 전체 사회를 위해 개인의 욕망은 통제되거나 절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니까. 이렇게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 자신의 욕망을 검열하는 것이 바로 ‘이성’의 역할이다. 결국 이성의 윤리학은 사회의 윤리학이지 ‘살아 있는 나’의 윤리학일 수는 없다. 욕망을 긍정하면서 스피노자가 복원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