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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눈물, 아카시아

2010.06.03 16:08

구인회 조회 수:3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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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 눈물, 아카시아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두름박제

       황등산에 황토밭 황토 고구마

       고불고불 재빼기 햇볕 넘는 동네

       그 곳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제 맘대로 흥에 겨워 바꿔본 ‘고향의 봄’

       누구나 흙에서 자란 고향을 그리워하고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립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모든 것이 꽃처럼 슬프고 꽃처럼 아름답습니다.

       지금처럼 먹을거리가 풍성하지 못했던 시절

       뽀빠이, 똘똘이, 짱구, 뻥튀기

       지금은 사라지거나 별로 인기 없는 과자,

       그 당시는 이런 것들이 끝도 없이 먹고 싶었던 환상의 과자였지요.

       그때는 먹어도 먹어도 왜, 배가 고픈지 알다가도 모를 한심한 배

       그럴 때면 과자 말고 철따라 다른 먹거리를 찾아 다녔습니다.

       간식거리로 젤 많이 먹었던 건 황토밭에 난 황등 고구마

       황토마루 고구마가 많이 나는 곳이라 눈 뜨면 고구마 밭

       우리집 고구마 놔두고 이웃집 고구마 몰래 서리하여

       큰 고구마 옆에 끼고 작은 고구마 깎아 먹던 맛이란?

       다음에는 단수수, 옥수수 줄기 마디마디

       그 단수수 옥수수 줄기가 얼마나 맛있던지 옥수수 열매가 맺기 전에

       그 많은 수수들이 열매 맺지 못하고 제 간식거리로 사라져 갔습니다.

       봄철에 나는 삘기[띠풀]도 주요 간식거리.

       줄기에서 꽃 피려고 하는 시점을 잘 알아 놨다가 언덕배기를 쏘다니며

       살진 풀꽃을 골라 수 없이 뽑아 먹었습니다.

       꽃이 활짝 피기 전 산억새 연한 꽃도 즐겨먹는 음식이었지요.

       삘기, 억새 왠 만한 간식보다 나은 먹을 거리였습니다.

       특히 가난하고 슬픈 오월이 오면 천지에 하이얀 아카시아 꽃.

       오뉴월 배고픈 사람들의 마음을 아시는지 줄기 마디마다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탐스런 하얀꽃이 주렁주렁 매달립니다.

       배고픈 시절 아카시아꽃은 아이들에겐 가장 풍성한 계절의 성찬

       자치기, 구슬치기 나이먹기, 실컷 놀다 꽃이 내뿜는 달콤한 향기에

       벌 나비와 함께 가시에 찔려가며 이 꽃을 마음껏 따먹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제는 불재의 명물 붉은 아카시아

       십년 전쯤 물님이 북한에서 계량한 특별한 수종이라며

       붉은 아카시아 묘목을 가져와서 육각재 등지에 심었습니다.

       걸음도 안주고 별로 신경 안써서 그런지 세월이 지나도 꽃을 피우기는커녕

       커다란 가시로 중무장하고 사정없이 자리만 넓혀 갔습니다.

       이곳을 온통 이 고약한 아카시아로 뒤덮을 것 같은 징조가 보이기도 했지요

       아무리 뽑고 베어내고 못살게 굴어도 보란 듯이 영역을 넓입니다.

       그러던 차 지난 주 문득 육각재를 돌아가 보니

       아니, 이 꽃이 온 세상을 진분홍 물감을 드린 듯 온통 사랑의 빛깔로

       푸른 하늘을 뒤 덮는 게 아니겠어요.

       푸른 하늘 진분홍 꽃, 꽃잎의 향연, 그 아름다움 앞에 눈물납니다.

       게다가 진분홍 꽃송이는 얼마나 크고 탐스럽든지...

       왜 가난한 북한에서 아카시아꽃을 개량했는지 짐작이 갔습니다.

       밥 대신에 허기라도 채울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이렇게 아카시아꽃은 허기를 채우는 음식일 뿐 만 아니라

       벌 나비가 매우 좋아하는 밀원식물

       아카시아꿀을 안 드셔 본 분이 없을 겁니다.

       이 꽃은 염증 개선 효과가 매우 뛰어나 만성 중이염과 임산부의 부종

       고약한 여드름 치료에 쓰입니다.

       심지어 약물 중독 등 항생제에 내성이 생겨 효능이 저하되었을 때

       그 대용으로 쓸 수 있는 천연 항생제,

       꽃의 아카세틴 성분이 신장의 열을 내리고 염증을 억제하고 담을 삭입니다.

       아카시아 나무의 이비신 성분은 항암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예로부터 만성 기침이나 위장질환, 부종 등에 잘 듣고

       황기보다 더 나은 보약제로 알려져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내 고향 아카시아

       하늘을 받든 그 키다리나무가 베어져나갔을 때

       내 마음도 건조해지고 추억도 건강도 같이 베어져나갔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아픈 오월 여기 고갯마루 불재 언덕배기

       그 옛날 하얗게 핀 내 고향 아카시아꽃

       지금 이순간 내 마음 따라

       곱게 곱게 되살아나 진분홍빛

       사랑의 눈물 터뜨립니다.

  

            

                                                                   s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