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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은 스승입니다.

2012.07.16 11:08

제로포인트 조회 수:1336

나의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볼땐 언제나 나의삶을 이끄시는 하나님을 만나게됩니다.

의도했던 일,

억지로 했던 일,

우연처럼 일어났던 일,

얼덜결에 그냥 하고 싶어서 했던일,

의도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던 일까지도.......

내 모든 일들은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말씀을 이루려 하는듯이  

그렇게 꼭 필요한 시간에 내 삶에 일어났습니다.

 

거대 자궁근종이라는 스승이 내 삶에 찾아온 것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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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민족 생활연구회 장두석 선생님>께 드린 편지글을 불재 식구들과도 나누고싶어 올립니다.

 

 

 

 

새벽 5시,

오늘도 어김없이 새 날을 선물로 받습니다.

값없이 주신 이 선물이 감사하기는 즐거이 노래하는 산새들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밭으로 나갑니다.

내게 생명을 주고 안식을 주는 흙을 밟습니다.

새벽에 김을 메면 그 풀들이 하루 땡볕에 바짝 발라 다시 그 땅에 거름이 됩니다.

이렇게 한 차례 밭일에 흠뻑 땀을 흘리고 나면 출근준비를 하지요.

 

존경하는 선생님,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깨달음을 주었던 지난 해 7월 이후,

저의 삶은 크게 변하였습니다. 오늘은 선생님을 뵈 온 지 일 년이 되는 이즈음에

선생님을 통해 변화된 제 삶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끊임없는 남과의 경쟁에서 마음은 지칠대로 지쳐가고,

요리하기 쉽고 달콤한 타성에 젖은 식생활로 몸은 망가져 갔지요.

제 몸속에 지름 18cm의 종양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혹이 너무 크고 떼어내기 힘드니 자궁도 함께 드러내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큰 혹이 어떻게 내 몸속에 있게 되었을까..

내 스스로가 한심하기 짝이 없었고,

원인에 대한 성찰 없이 내 소중한 장기를 그냥 없애버리라고

그렇게 쉽게 말하는 의사들에게 화가 났습니다.

‘내 몸속에 그것이 생기게 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터인데

그 이유를 해결하지 않고 결과인 혹만 제거를 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돌아보면 내 안에 그런 의문점을 갖게 하신 것이 내겐 은혜였습니다.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다가 바로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자궁에 있는 거대종양에만 온 신경을 다 쓰던 저는

그것만 없어지면 건강해질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교육 기간 내내 뭐든지 최선을 다했지요.

풍욕, 냉온욕, 발물, 각종 찜질, 산책..

그런 제게 선생님은 혀를 차시며 “너무 열심히 허지 마라”라고 하셨습니다.

병이라는 현상에 집착하는 모습, 꼭 낫고야 말겠다는 또

하나의 욕심에 메여있는 모습을 안타까이 여기셨던 것이지요.

제게 마음을 돌아보라고 말씀하시는 듯 했습니다.

 

상고사에서부터 시작된 역사교육 그리고 계속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리고 북한과의 통일 문제까지..

선생님이 ‘이것 좀 생각해봐라~’하시는 모든 문제들은 제 자궁의 종양이 아니고 자연과 합일하는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게 해 온 왜곡된 문화에 있었습니다.

건강은 정신과 혼의 올바른 바탕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셨지요.

 

선생님의 큰 가르침 따라 시골로 이사 들어온 지 1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두 번 째 여름을 맞이하고 있지요.

새벽 미명에 눈 떠 온 가족이 풍욕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

한 걸음에 달려 나가 맨발로 흠뻑 땀 흘리며 밭을 돌아보는 일,

퇴근하면 해질녘에 마실을 돌며 마을 어른들 살아오신 지혜에 귀 기울이는 일,

현미오곡밥에 된장국과 밭에서 막 따온 푸성귀들로 저녁상을 차리는 일,

적지만 수확한 농산물들을 지인들과 나누는 기쁨을 누리는 일.......

아! 제게 펼쳐주신 이 세상이 감사하기만 합니다.

자연은 그 품속에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제게 무궁무진한 에너지를 부어줍니다.

 

사람들이 건강해진 저를 보고 병이 다 나았느냐고 묻습니다.

러면 저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대답합니다.

"병은 원래 없어요. 병을 병이라고 이름 짓고, 그 이름 앞에 두려워하고 끄달리는 잘 못 살아온 내 생활 습관이 있을 뿐 이예요”

“ 현미오곡밥에 발효된 전통식품 그리고 맵고 짜고 신 음식들과 욕심없이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 그 마음이 건강의 비결이래요”라고요...

진정 내 자궁의 종양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가감없이 보여주는

거울이고 스승이었습니다.

잘못 살아온 것을 알아야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종양이 고맙기까지 합니다.

종양이 없었으면 욕심으로 가득 찬 제 마음을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테고,

내 생명이 어디로부터 왔는가에 대한 성찰도 없이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무식한 삶을 살았겠지요.

돈으로 사는 생명은 진정한 생명이 아니었음을,

그런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는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자연 속에서 살면서 몸으로 배웠습니다.

참으로 종양은 나를 제대로 살게 하려는 스승으로 내 삶에 찾아왔던 것입니다.

 

단단하고 요지부동이었던 제 자궁의 혹이 21일 단식 후 훌렁훌렁하게 움직였습니다. 혀를 끌끌 차시던 선생님께서 환하게 좋아하시며 “인자 너 살았다” 하셨지요.

그 말씀 생생합니다. 환히 웃으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뵙는 듯합니다.

그리 훌헝훌렁하면 혹만 떼어내도 된다 하시어 6개월 후 수술을 했습니다.

담당 의사는 저의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가족들에게 떼어 낸 혹을 보여주었답니다. 커다란 쟁반 가득 담긴 혹을 본 가족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해요.

그렇게 크고 무거운 것을 어떻게 달고 다녔을까 생각했겠지요.

수술 후 의사는 ‘눈에 보이는 것들은 다 제거 했지만

위치상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하나가 남았다’고 했습니다.

참 솔직한 표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그것이 정확한 표현이지요.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라는 걸 알기에

하나가 남았다는 말 또한 제게 두려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하나가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가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제 몸을 만들어 가느냐 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몸에도 마음에도 조급함 대신 여유로움이 생겼고

수술 후 회복도 잘 하여 올 해 3월엔 학교에 복직하였답니다.

 

복직을 하고 나서 작년처럼 맘껏 농사를 짓지는 못합니다만

출근 전 잠깐 퇴근 후 잠깐 하는 밭일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

올 해는 콩 , 고추 농사를 잘 지어 된장 고추장을 담는 게 제 목표입니다.

병나기 전에는 부모님께 된장 고추장 간장 받아먹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이제 내 손으로 우리 전통의 먹거리를 마련하는 과정 자체가 치유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지요.

이번 여름 방학 때는 제가 농사지은 감자, 양파, 마늘 가지고

선생님을 찾아 뵐 생각에 지금부터 마음이 설렙니다.

제게 진정한 삶의 세계를 안내해 주신 선생님,

깊은 감사의 마음 담아 큰 절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