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2258548
  • Today : 91
  • Yesterday : 638


논어 제10편 [향당鄕黨] "생활" l

2012.07.24 16:59

구인회 조회 수:3158

 

                                                      

                  

                     논어 제10편 [향당 鄕黨]"생활"

 

 

 논어를 통털어 이 향당 편만을 놓고 볼 때 공자가 얼마나 형식과

 예법에 치우친 사람이었는지 불편한 의문이 일기 쉽상입니다.

 특히 자본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한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있어

 이런 형식과 예법은 적쟎은 가치관의 혼란을 주고 공자를 이해하는데

 있어 커다란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논어와 그의 삶에서 면면히 흘러나오는 공자의 정신사를 볼 때

 그는 그렇게 예법에만 치중한 고루하고 꽉막힌 도덕군자가 아니었으며

 누구보다 자유와 의와 인의정신을 창조적으로 구현한 선각자였습니다.

 "志於道하며 據於德하며 依於仁하며 游於藝니라"

 뿐만아니라 그의 예 역시 허식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 인륜의 근원이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하는 것으로 예가 통하지

 않는 시대에 예를 삶의 기저로 택하고 예로써 그 중심을 잡음으로써

 도에 뜻을 두고 덕을 근원으로 인에 의지하여 예로서 열어가는

 인륜과 예의가 통하는 사람냄새 나는 새시대를 열고자 했습니다. 

 

 한편 이 향당편은 공자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지어진 것도 아니고 

 그분의 생각과 뜻보다는 의식주와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지켜보거나

 귀담아 들은 이들에 의해 자의적으로 채색된 글로 볼 수 있으며,  

 유자의 제자든 증자의 제자든 공자 사후 종통을 이어가려는 사람들과

 논어를 주로 편집한 이들의 주관적 견해가 들어있다고 생각됩니다.

 

 여기서 향당 鄕黨이라 함은 공자가 사신 마을을 뜻하기 보다

 공자가 가족과 함께 거처하는 집안을 뜻한다고도 볼 수 있으며,

 사람들은 대게 겉으로는 잘하면서도 속으로 문란한 경우가 많은데

 이 향당鄕黨 편을 통해서 공자가 얼마 자신에게 가혹하리만큼

 철저했으며, 수신修身을 통해서 천하를 화평케하려는 마음가짐과

 동시에 그의 겉사람과 속사람의 면면을 헤아릴 수 있게 됩니다.

  

"廐焚이어늘 子退朝曰 傷人乎아 不問馬

 구분이어늘 자퇴조왈 상인호아 불문마

 마구간에 불이 났다. 공자가 조정에서 퇴근하여

'사람이 다쳤는가?' 묻고 말馬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었다."

    

                                                   'sial

  

 

1. 孔子於鄕黨에 恂恂如也 似不能言者 其在宗廟朝廷 便便言 唯謹爾

   공자어향당에 순순여야 사불능언자 기재종묘조정 변변언 유근이
   공자가 향당에 있을 때에는 신실하여 말을 못하는 듯하였다. 종묘와

   조정에 계실 때에는 거침 없고 분명히 말씀하시되 삼가함이 있으셨다.


2. 朝與下大夫言 侃侃如也 與上大夫言 誾誾如也 君在 踧踖如也 與與如也
   조여하대부언 간간여야 여상대부언 은은여야 군재 축적여야 여여여야
   조정에서 하대부와 말할 적에는 화락한 듯이 하였으며, 상대부와 말할

   때에는 온순한듯 하였다. 임금이 있으면 공경하는 중에도 위의가 있었다.


3. 君召使擯 色勃如也 足躩如也 揖所與立 左右手 衣前後 襜如也
   군소사빈 색발여야 족곽여야 읍소여립 좌우수의전후 첨여야 
   趨進에 翼如也 賓退어든 必復命曰 賓不顧矣
   
  
추진에 익여야 빈퇴어든 필복명왈 빈불고의
   임금이 부르셔서 내빈 접대를 하라시면, 안색을 바꾸고 걸음걸이를

   조심하였다. 내빈과 읍할 때에는 손을 조심스럽게 올리셨으며,

   옷이 가지런하였다. 빨리 걸어가실 때에는 새의 날개와 같았다.

   손님이 물러가면 반드시 "내빈은 뒤를 볼아보지 않았나이다."


4. 入公門 鞠躬如也 如不容이러시며 立不中門하시며 行不履이 
   입공문 국궁여야하사 여불용이 입불중문하시며 행불리역이 
   過位 色勃如也 足如也 其言이 似不足者러시다 攝齊升堂
   과위 색발여야 족곽여야 기언이 사부족자러시다 섭제승당  
   鞠躬如也 屛氣 似不息者 出降一等하사는 逞顔色하사 怡怡如也하시며 
   국궁여야 병기 사불식자 출강일등하사는 영안색하사 이이여야하시며 
   沒階하사는 趨進翼如也하시며 復其位하사는 蹴척如也 
   몰계하사는 추진익여야하시며 복기위하사는 축척여야   
 
   대궐문에 들어갈 때는 허리를 구부리는 것이 들어가기 어려운 것처럼

   하였다. 문 가운데에 서지 않으며, 가실 때에는 문지방을 밟지 않았다. 임

   금의 자리를 지나갈 때에는 얼굴색이 변하였으며, 걸음이 주춤거리고,

   말은 제대로 못하는 듯이 하였다. 옷자락을 잡고 당에 올라갈 때는 몸을

   구부리며, 숨을 죽여 숨쉬지 않는 것 같이 하였다. 나올 때 한층계를 내려

   가서는 얼굴빛을 풀어 즐거운듯하였다. 계단을 내려가서는 종종걸음으로

   새가 날개를 펴듯이 하였으며, 자리에 돌아와서는 태도가 공경하였다.

  

5. 執圭 鞠躬如也 如不勝 上如揖 下如授 勃如戰色 足蹜蹜如有循 
   집규 국궁여야 여불승 상여읍 하여수 발여전색 족축축여유순 
   
享禮에 有容色하시며 私覿에 愉愉如也
   향례에 유용색하시며 사적에 유유여야 

   규를 잡을 때는 몸을 구부려 마치 그것을 못이기는 듯하였다.

   규를 올릴 때는 읍을 하는 높이로 하였고, 내릴 때는 남에게 물건을 주는

   높이로 하였으며, 얼굴빛은 변하였으며, 발은 공손히 하여 발끝을 땅에

   끌며 지나갔다. 임금에게 예물을 드릴 때에는 온화한 얼굴표정을

   지었으며, 사적으로 뵐 때에는 화락한 기색을하였다.


6. 君子는 不以紺緅로 飾 紅紫로 不以爲褻服 當暑 袗絺綌을 必表而出之 
   군자는 불이감추로 식 홍자로 불이위설복 당서 진치격을 필표이출지 
   緇衣엔 羔裘요 素衣엔 麑裘요 黃衣엔 狐裘 褻裘는 長 短右袂 必有寢衣 
   치의엔 고구오 소의엔 예구오 황의엔 호구 설구는 장 단우몌 필유침의 
   長이 一身有半이러라 狐貉之厚로 以居 去喪하사는 無所不佩러시다
   장이 일신유반이러라 호맥지후로 이거 거상하사는 무소불패러시다 
   非帷裳 必殺之러시다 羔裘玄冠으로 不以弔 吉月에 必朝服而朝러시다

   비유상 필쇄지러시다 고구현관으로 불이조 길월에 필조복이조러시다 
   부자 보라색과 주홍색으로 옷깃을 달지 않았으며, 홍색과 자색으로

   평복을 만들지 않았다. 더울 때는 가는 갈포와 굵은 갈포로 만든 홑옷을

   반드시 겉에 입었다. 검은 옷에는 염소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고, 흰 옷

   에는 사슴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으며, 누런 옷에는 여우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었다. 평상시에 입는 갖옷은 길고 오른쪽 소매는 짧게 했다.

   반드시 잘 때는 잠옷을 입었는데 길이가 몸길이의 한 배 반이었다.

   여우와 담비의 두터운 털옷을 입고 지냈다. 상복을 벗고 난 후에는 무슨

   패옥이나 다 찼다. 조회나 제사에 입는것이 아니면 치마는 반드시 줄여서

   꿰매었다. 검은 염소 갖옷에 검정 관을 쓰고는 조문하지 않았다.

   초하루에는 반드시 조복을 입고 조회에 나가셨다.


7. 齊必有明衣 布러라 齊必變食하시며 居必遷坐러시다 
   제필유명의 포러라 제필변식하시며 거필천좌러시다 
   재계할 때에는 반드시 명의를 마련해 두었는데 그것은 베로 만들었다.

   재계할 때에는 음식을 바꾸었으며, 거처할 때에도 반드시 자리를 옮겼다.

   
8. 食不厭精 膾不厭細 食饐而餲와 魚餒而肉敗를 不食 色惡不食
   식불염정 회불염세 식의이애와 어뇌이육패를 불식 색악불식  
   臭惡不食 失飪不食하시며 不時不食이러시다 割不正이어든 不食 
   취악불식 실임불식하시며 불시불식이러시다 할불정이어든 불식  
   不得其醬이어든 不食이러시다
   부득기장이어든 불식이러시다  
   肉雖多 不使勝食氣 唯酒無量 不及亂 沽酒市脯를 不食 不撤薑食 
   육수다 불사승식기 유주무량 불급란 고주시포를 불식 불철강식 
   不多食 祭於公에 不宿肉 祭肉은 不出三日 出三日이면 不食之矣니라 
   불다식 제어공에 불숙육 제육은 불출삼일 출삼일이면 불식지의니라  
   食不語 寢不言 雖疏食菜羹이라도 瓜祭하사대 必齊如也러시다
   식불어 침불언이러시다 수소사채갱이라도 과제하사대 필제여야 

   밥은 정한밥을 싫어하지 않으며, 회는 가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밥이 쉰 것과 생선이 상하고 고기가 부패한 것을 먹지 않았으며, 색깔이

   나쁜 것을 먹지 않았으며, 냄새가 나쁜 것을 먹지 않았으며, 익히지 않은

   것을 먹지 않았으며, 제철에 나지 않은 것을 먹지 않았다. 반듯하게

   자르지 않으면 먹지 않았으며, 간이 맞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고기가

   아무리 많아도 밥보다 더 많이 먹지 않으며, 술은 일정한 양이 없으나

   흐트러지지는 않았다. 주점에서 산 술과 포는 먹지 않았다. 생강을

   끊이지 않고 먹되 많이 먹지는 않았다. 나라에서 제사지내고 남은 고기는

   하룻밤을 넘기지 않으며, 집에서 제사 지내고 남은 고기는 삼일을 넘기지

   않았으니,삼일이 지나면 상해서 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을때에 

   는 말을 하지 않으며, 잘 때에 말하지 않았다. 거친 밥이나 나물국이라도

   반드시 고시레 하고 드셨으며 이때 반드시 정성껏 재계에 임하는 하였다.


9. 席不正이어든 不坐  석불정이어든 불좌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았다.

10. 鄕人飮酒에 杖者出이어든 斯出矣 鄕人儺에 朝服而立於阼階러시다
   향인음주에 장자출이어든 사출의 향인나에 조복이립어조계러시다 
   향인과 함께 술을 마실때에는 지팡이를 짚은 나이 많은 분이 먼저 나가면

   따라 나갔다. 향인이 굿을 할 때에는 조복을 입고 동쪽 섬돌에 서 있었다.

 
11. 問人於他邦 再拜而送之 康子饋藥이어늘 拜而受之曰 丘未達 不敢嘗
   문인어타방 재배이송지 강자궤약이어늘 배이수지왈 구미달이라 불감상
   다른 나라에 있는 사람에게 안부를 물을 때에는 가는 사람에게 두 번

   절하고 보냈다. 계강자가 약을 내리자 절하고 약을 받으며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 약을 잘 모르므로 감히 맛 볼 수 없습니다.”라고 하셨다.


12. 廐焚이어늘 子退朝曰 傷人乎아하시고 不問馬하시다
   구분이어늘 자퇴조왈 상인호아하시고 불문마하시다 
   마구간에 불이 났다. 공자가 조정에서 퇴근하여 말하기를,

  "사람이 다쳤는가?"하고,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13. 君이 賜食 必正席先嘗之 君이 賜腥 必熟而薦之 君이 賜生 必育之 
   군이 사식 필정석선상지 군이 사성 필숙이천지 군이 사생 필육지러시다 
   侍食於君에 君祭 先飯 疾에 君이 視之 東首 加朝服拖紳 君이 命召어시든 

   시식어군에 군제어시든 선반 질에 군이 시지 동수 가조복타신 군이 명소 
   不俟駕行矣
불사가행의

   임금이 먹을것을 주면 반드시 똑바로 앉아 먼저 맛보고, 임금이 날고기를

   주면 반드시 익혀서 제사음식으로 올리고, 임금이 산짐승을 주면 반드시

   길렀다. 임금을 모시고 식사할 때에 임금이 고시레를 하면 먼저 밥을

   먹었다. 병이 들었을 때에 임금이 보러오면 동쪽으로 머리를 두고,

   조복을 덮고 허리띠를 걸쳤다. 임금이 부르면 수레에 멍에를 얹는 것도

   기다리지 않고 먼저 떠나갔다.


14. 入太廟하사 每事를 問  입태묘하사 매사를 문
  
태묘에 들어가서는 모든 일을 하나하나 물었다.

15. 朋友死 無所歸 曰 於我殯이라 朋友之饋는 雖車馬라도 非祭肉 不拜
   붕우사 무소귀 왈 어아빈이라 붕우지궤는 수차마라도 비제육 불배 
   친구가 죽었을 때 빈소를 차릴 곳이 없으면, "우리 집에 빈소를 차리라"
   벗이 준 것은 수레나 말일지라도 제사고기가 아니면 절하지 않았다.
 
16. 寢不尸하시며 居不容이러시다 見齊衰者하시고 雖狎이나 必變하시며

   見冕者與瞽者하시고 雖褻이나 必以貌러시다
   침불시하시며 거불용이러시다 견제쇠자하시고 수압이나 필변하시며

   견면자여고자하시고 수설이나 필이모러시다 
   凶服者를 式之하시며 式負版者러시다 有盛饌이어든 必變色而作이러시다

   迅雷風烈에 必變이러시다

   흉복자를 식지하시며 식부판자러시다 유성찬이어든 필변색이작이러시다 

   신뇌풍열에 필변이러시다 

   잘 때에는 죽은 사람처럼 자지 않았으며, 집에 있을 때에는 모양을 내지

   않았다. 상복을 입은 사람을 보면 비록 친한 사이라도 반드시 얼굴빛을

   변하였으며, 관을 쓴 사람과 장님을 보면 비록 자주 보는사이라도 반드시

   예모를 갖추었다. 상복을 입은 사람에게 공경을 표하고, 호적을 짊어진

   사람에게도 공경을 표했다. 성찬을 대접 받으면 반드시 얼굴빛을 변하고

   일어났다. 우레가 치고 바람이 사나우면 반드시 얼굴빛을 변하였다.


17. 升車 必正立執綏 車中에 不內顧하시며 不疾言하시며 不親指러시다
   승차 필정립집수 차중에 불내고하시며 불질언하시며 불친지러시다 
  
수레에 탔을 때에는 반드시 똑바로 서서 고삐를 잡았다. 수레 안에서는

   뒤를 돌아보지 않으며, 빨리 말하지 않고, 친히 손가락 질 하지 않았다.

   
18. 色斯擧矣 翔而後集 曰 山梁雌雉 時哉時哉 子路共之한대 三嗅而作
   색사거의 상이후집 왈 산양자치 시재시재인저 자로공지 삼후이작 
  
기색을 보고 놀라 날아서 빙빙 돈 뒤에 다시 모인다. 공자가 말씀하셨다. 

  "산 돌다리의 암꿩아! 때를 만났구나, 때를 만났구나." 라고 하자,

   자로가 앞으로 나아가자 꿩은 세 번 냄새를 맡고 일어나 다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