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tal : 1644839
  • Today : 307
  • Yesterday : 547


화천대유[火天大有]"아버지"

2012.11.06 13:15

구인회 조회 수:2883

  00992.jpg  

        

                                               

                                         14. 화천대유 [天大有 ]



     화천대~1.JPG

       [火天大有]

   

               

  大有주역 열 네번 째 괘 “화천대유 火天大有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 애국가

 

    물님은 예배나 수련과정에서 지구 위에 정좌하고 있는 자신을 지켜보고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도는 것처럼 지구와 하나 되어 시계 반대 방향으로 같이 돌아보라고 합니다.

    이렇게 우주의 한 배역을 맡아 도는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존재됨에 대하여

    근원적인 물음과 통찰이 일어납니다. 결국 사람은 혼자가 아니며 무수한 편물의 코와

    같이 수 많은 관계와 인연의 어우러짐을 통해서 여기 이자리에 존재함을 알 수 있으며

    하늘을 머리에 둔 존재로서 그 존재됨의 존엄과 위대함을 같이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단지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하느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 로서 인간

    은 하느님과 더불어 그 존재거룩이요 축복이란 말입니다.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밝힌 다석 유영모님의 말씀을 통해서 대유의 문을 엽니다.

   

  "사람이 다른 동물과는 달리 곧게 일어서는 것은 우로부터 온 까닭이라고 생각된다.

    마치 모든 초목 草木이 태양에서 왔기 때문에 언제나 태양이 그리워 태양을 머리에

    이고 태양을 찾아 하늘 높이 곧이 곧장 뻗어가며 높이 서 있듯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언제나 우로 머리를 두고 언제나 하느님을 사모하며 곧이 곧장 일어서서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느님을 찾아가는 것은 식물의 향일성 向日性

    같이 사람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사람의 본성(本性)이라고 생각된다.

    초목草木의 향일성과 같은 궁신하려는 본성 때문에 사람은 풀이 땅을 뚫고 돋아나듯

    이 만물을 초월하여 무한한 발전을 가능케 할 수 있으며 나무가 높이 자라 땅을 덮듯

    사람은 만물을 이기고 다스리며 살아갈 수 있다.  - 다석 유영모 (1956) "

 

    이와 같이 다석 선생이 사람이 하느님로부터 나왔으므로 하느님에 대한 그리움이

    사람의 본질이라고 말씀이 주역 13번째  천화동인 天火同人의 실체라면

    그 그리움에 응답하여 도우시고 사람을 찾으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라는 아래 

    라삐 바룩의 예화가 다음 주역 열 네번째 괘 화천대유火天大有의 본질입니다.

 

    라삐 바룩의 손자가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합니다. 그는 몸을 숨기고 친구가 자기를

    찾을 것으로 생각하여  그 자리에 숨어 버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숨바꼭질

    하던 친구들이 그만 친구고 뭐고 찾기를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지요.

    뒤 늦게 이 사실을 안 아이는 뿔따구가 나서 울음을 터뜨리며 할아버지께 이릅니다.

    손자의 응석받이를 하면서 라삐 바룩은

   "하느님께서도 내가 숨어 있는데,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구나 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하나님은 자신을 애써 찾는 사람을 찾으시는 분이시며 인간에게서 하느님의

    본질은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 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 분에 대한 탐색하는 감각이 퇴화되고 자신을 깊이 숨겨버린 인간에게 있어

    그 분의 눈에 띠거나 그분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며, 경전에서 조차도 그 분의 삶과

    본질 등에 대해서는 드러내시지 않고 은유와 침묵으로 일관하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그분에게 여는 만큼  나타내 보이고 여러 형태로 끊임없이 그분의

    사랑과 보살핌을 경험하는 것 역시 주지의 사실. 그분은 여기 또는 저기에 계시는 분

    이라기 보다 동시에 여기와 저기에 계시는 분으로서 우리가 하느님을 알 수 없더라도

    우리가 쏟는 관심의 정도를 떠나 그분은기꺼이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표현하십니다. 

    누구나 인생 속에서 "대관절 내가 무엇이건데 이렇게 살려 주시고 보살펴 주십니까?"

    라 고백하게 되고, "하느님께서 너도 몰래 너를 보살피셨다 45:15" 는 이사야의 통찰이

    현존하는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됩니다.

    이렇게 세상 속에 존재하고 존재함으로 나타내시며 인간의 한계상황과 부르짖음 속에

    현존하는 그분의 영을 바라보는 자들에 대하여 무한한 관심과 극진하신 사랑,

    창조물의 본질속에 만유에 대한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현재하고 계신 형상이 주역의

    열 네번째 하느님의 괘,

    일음오양의 구오의 자리에 한량없는 축복과 자비의 효가 위치한 화천대유 火天大有 

   

    자천우지 길무불리 自天祐之 吉无不利

 

   "하느님이 스스로 돕는 자를 도우시니 행복하고 기쁘지 않음이 없다."

    일음 오양의 열 세번째 괘가 하늘 아래 타오르는 불, 육이와 구오가 만나 천상에서

    혼인잔치를 하는 괘가 천화동인 天火同人이라면 일음 오양의 열 네번째 괘는 하늘

    위의 불이 자비와 은총으로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화천대유 火天大有

    또 동인同人이 제 각각 땀흘리고 힘써 부자가 되는 소유小有 라면 대유大有는 하늘

    위 태양, 소유의 근원으로서 한 없이 크고 위대한 존재이자 큰 부자 巨富가 태양이

    우주 만물에 대하여 햇빛을 주듯이 그 소유를 필요에 따라 공정히 나눠 주는 괘 卦

 

    대유 원형 大有 元亨 "대유는 근원이고 형통하다" 

    북송의 주렴계周濂溪 는그의 태극도설에서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요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니, 태극은 본디 무극"이라며 '태극이무극 太極이無極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태泰와 무無가 같다는 것은 그 크기가 무한하여 표현 불가능하다는 의미겠지요.

    대유大有는 무한히 큰 존재를 나타내는 말로서 주렴계는 '태극이 무극 太極이 無極',

    불교는 空이나 無, 도교는 도道나 자연自然, 배화교는 불火, 기독교는 하느님라 호칭

    하고 있으니, 이와 같은 인식은 역에서 말하는 대유大有를 칭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눈 뜬 시인은  밤 하늘의 별을 보면서 존재함에 대하여 외경심으로 채웁니다.

   "당신의 작품, 손수 만드신 저 하늘과 달아 놓으신 달과 별들을 우러러 보면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 주시며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시편 8:3,4)

 

    상왈 대유 유 득존위 大有 柔 得尊位 " 대유는 부드러움이 왕의 자리를 얻는다." 

    일음오양, 음은 육오 하나이고 나머지는 다섯은 다 양입니다. 부드러움이 왕의 자리를

    얻는다는 것은 문왕처럼 부드럽고 덕망있는 자가 백성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이고,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시고 햇빛을 주시는 것처럼 육오에 자리에 계신 大有 대유가

    누구 할 것 없이 천하 만민을 사랑과 자비로 공평하게 통치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대중이상하응지 왈대유  大中 而上下應之 曰大有 "대유라 일컫는 것은 세상의 중심이

    되어 아래 위가 거기에 따름을 뜻한다." 아래 위 할 것 없이 사람들의 마음이 대유大有

    를 따릅니다. 그가 처한 시간과 장소에 따라 예수, 붓다, 공자, 소크라테스를 따릅니다

    이도 저도 아니면 신神, 도道, 무無, 공空 가슴 속 깊이 새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대중 이상하응지 大中 而上下應之, 대중이 고 김대중 대통령을 생각나게 하는군요.

    대중 大中 이라 지어진 이름으로 자신의 중심이 되고 존재를  존재이게 했습니다.

    자신이 유득존위 柔得尊位 자신을 비움으로 힘 없는 사람의 주권을 바로 세웠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비우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상하응지 上下應之 국민이 따릅니다.

    백성의 마음이 성인의 마음이고 성인의 마음이 대중大中의 마음입니다.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을 때 백성과 대중이 하나되고 대통大通합니다.

 

    화재천상 대유 군자이 알악양선 순천휴명 火在天上 大有 君子以 遏惡揚善 順天休命

   "불이 하늘 위에 있는 것이 대유, 군자는 이로써 악을 끊고 선을 드러냄으로 하늘의

    뜻에 순종하며, 그 천명을 받든다." 인간이 악을 끊어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요.

    인간이 죄악과 어둠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게 그리 간단하고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고요 화재천하 火在天上, 하늘의 불이 뜨겁게 임해야 합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다이모니온' 이 자신을 이끌어 주신다고 했고, 보리수하정성각

    菩提樹下正成覺, 붓다는 보리수 나무 밑에서 큰 깨달음을 얻고, 예수님에게는 성령이

    비둘기 날개처럼 내려옵니다. 이 하늘의 성스러운 불에 의하여 방거사의 흰 눈이자

    금강석 같은 자신의 결정結晶이 생겨남으로 징글징글한 악으로부터 벗어나게 되고  

    양선 揚善, 선과 일체가 되어 하늘의 명령을 따를 수 있는 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초구 무교해비구 간즉무구 初九 无交害匪咎 艱則无咎

   "해로운 악과 가까이 하지 않으니 허물이 아니다, 갖은 고생을 겪으니 허물이 없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쫒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 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의 심은 나무가 시절을 쫒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 1편

    이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악을 끊어야 합니다. 악행을 향해 뒤를 돌아봐선 안 됩니다.

    오죽하면 악과 가까이 하지 않고 죄를 멀리하는 자를 복 있는 자라고 까지 했을까요?

    그러나 악을 끊기에는 보통 험난한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며, 고난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고난이 악으로부터 이탈되는 보약이 됩니다. 산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숨이

    가쁘지만 정상에 오르고 나면 숨이 평안하고 앞이 훤히 내다 보입니다.  

 

    구이 대차이재 유유왕 무구 大車以載 有攸往 無咎

   "큰 수레에 싣고 가니 허물이 없다"   

    대차이재 적중불패 大車以載 積中不敗 "큰 수레에 실으니 넉넉하여 패하지 않는다."

    만인의 아픔과 민족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큰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유득존위 柔得尊位, 그는 자신을 버리고 온유함으로 백성과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 천장강대임어사인야 天將降大任於斯人也 필선고기심지 必先 苦其心志 노기근골

    勞其筋骨 아기체부 餓其體膚 궁핍기신 窮乏其身 행불난기소위 行拂亂其所爲 是故

    동심인성 動心忍性 증익기소불능 增益其所不能

    하늘이 장차 사람에게 대임을 맡기시려 할때는  먼저 반드시  그 마음을 고통스럽게

    하고 그 육체를 고달프게 하고그 배를 곯게 하고 그 신체를 고달프게 해 하려는 일에

    어려움이 없게 하려함이다, 즉 그 인내심을 길러 그 일을 더욱 잘 하게 하려 함이다."

    대차 大車, 자신을 넘어서 전체를 생각하는 대승적인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유익을 탐하는 비좁은 수레가 아닌 만인의 행복을 자신의 복락으로 아는 넓적

    지근한 큰 수레를 이끄는 이가 지도자가 되어야 나라가 평안하고 국민이 행복합니다.

   

    구삼 공용형우천자 소인불극 公用亨于天子 小人弗克

   "제후라야 천자를 섬긴다. 소인은 이를 해내기 어렵다"

    인간을 섬길 수 있는 마음은 뻣뻣한 자가 아니라 겸손하고 온유한 자로부터 나옵니다.

    가장 잘 나누고 희생과 헌신함으로 님의 마음에 드는 자, 님의 찾으심을 알아 차리고

    정성을 다하여 보필하는 자가 님의 마음에 드는 자요, 진정 섬길 수 있는 자입니다.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성장의 열매가 섬김이고 섬김이 곧 구원입니다.

    섬길 줄 아는 사람 만이 자신을 구원하고 위기로부터 공동체를 구해낼 수 있습니다.

 

    구사 비기방 무구匪其彭이면 无咎 "자기가 사라지면 허물이 없다."

    인간의 에고가 뱀처럼 또아리를 틀고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유혹합니다.

    아무리 흔들리고 자빠지지 않으려고 버텨도 뱀의 세력이 너무 큽니다.

   "욕망과 욕심에 사로잡혀 “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발이 죄를 짓게 하거든,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손과 발을 잘라 버리고, 그 눈을 빼 던져 버려라."

    자기을 버리는 길은 이토록 처절한 몸부림이지 욕망과 같이가는 길이 될 수 없습니다.

    하늘에 구름이 끼면 달을 볼 수 없습니다. 그 뫔이 허실생백 虛室生白이라,

    어둠이 사라지고 욕망이 사라지면 얼굴에 흰 빛이 생겨나고 하나님을 봅니다.

   그래서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고 합니다.

 

    구오  궐부 교여 위여 길  厥孚 交如 威如 吉

   "진실함으로 서로 믿고 사귀니 권위가 있어 길하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형식과 의전, 먹다 남은 것을 한 두푼 내 던져 주는 자선이나 적선이 아니라

    내 몸처럼 진심으로 섬기고 드리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합니다.

    백성은 백성 답고 선비는 선비 답고 대부는 대부 답고 왕은 왕 답게 행동해야 합니다.

    이순간 하느님을 뵈오니 그분이 나를 보는 눈과 내가 하느님을 보는 눈이 같습니다.

    내 도끼가 그저 쇠도끼라 하니 산신령이 쇠도끼는 물론 금도끼 은도끼도 다 줍니다.

 

    상구 자천우지 길무불리 自天祐之 吉无不利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시니 기쁘고 행복하다"

    영혼이 육신을 가득 채우듯이 그 영혼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운 사람.

    한 떨기나무에 계신 하느님을 알아보고 신발을 벗어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사람,

    하느님이 보우하사 손잡아 주시고 눈동자처럼 보호해 주시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대유상길 자천우야 대유상길 자천우야 大有上吉 自天祐也

    하느님이 도우시는 존재요 그 도우시는 하느님을 가지는 것이 가장 행복합니다

      

   "나는 높고 거룩한 보좌에 앉아 있으면서 얻어 맞아 용기를 잃은 사람들과 함께 살며

    잃은 용기를 되살려 주고 상한 마음을 아물게 한다." -이사야

    영혼이 육신을 움직이고 하느님이 이 세상을 움직이는 괘 화천대유 火天大有

    한 처음은 하느님이 인간을 보고 인간과 새로운 관계로 하나 되고자 도우시는 순간

    밤하늘의 신비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당신의 사랑과 자비가 바로 대유 大有이니

    우리의 영혼을 달아오르게 하는 거룩하고 신성을 향한 마음 또한

    그분의 다정한 메시지요 아직도 우리의 가슴 속에 뜨겁게 남아있는 아버지의 사랑,

    그 사랑을 우리가 모시고자 한 자리에 눈 뜨고 웃고 계신 분이 한 분 하느님.

 

    자천우지 길무불리 自天祐之 吉无不利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마치 거대한 산이 우리 눈 앞에 우뚝 솓아 있듯이 존재와 존재 너머 계신 하느님

    영혼의 오솔길에서 만난 그 크신 하느님을 다름 아닌 아버지라 부르며,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 됨이 바로 가장 큰 축복이라고

    주역 열 네번째 괘 화천대유火天大有가 그 뜻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하느님께서 너희의 내일 일도 돌보아 주실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의 것으로 족하다." - 마태6:34

 

       

                                                              s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