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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천수송[天水訟]"소송"

2010.08.27 10:55

구인회 조회 수:2615

 천수송1.jpg


                                     천수송[天水訟]



    천수송괘.jpg

      天 水 訟

 

    訟 여섯 번째 괘“천수송 天水訟”

    수천수 水天需와는 정 반대로 이번에는 하늘과 물이 뒤집어진 괘

    아버지[天]는 엄하시고 둘째 아들[水]은 자꾸만 집을 나가려고만 하니,

    어이 하리요, 하늘은 하늘이고 물은 물이로다

    위로는 하늘이 강건하고 아래로는 물이 험하니 앞날이 예측불허.

    하늘은 하늘대로 변함없이 창연하고 강물은 강물대로 무겁게 흘러갑니다.

    하늘도 그대로요 물도 그대로 도저히 화합하고 전혀 섞일 것 같지 않습니다.

    나는 나, 너는 너, 서로 통할 것 같지 않고 좀처럼 이빨이 먹힐 것 같지 않아요.

    하늘과 물이 서로 대적하여 한바탕하려고 하는 기세이니, 형세가 험악합니다.

    결국 안 되는 사람, 안 되는 집안, 안 되는 국가의 전형적인 모양,

    엄한 아버지는 공부하라 시고 험한 둘째 아들은 나가 놀려고 만 합니다.

    남과 북이 첨예하게 대치되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대립하는 형국입니다.

    하늘과 물이 평행선을 달리듯이 서로의 의견과 주장이 대립되어 평행선을 그을 때

    인간관계는 악화되고 이성은 피폐해집니다. 이렇게 피폐해진 상태,

    최후의 극한 단계에서 하는 일이란 쌈이요 이판사판 소송 訴訟을 거는 거지요.

    이는 이성과 도덕, 양심의 판단에 맡기는 게 아니라 법의 잣대에 맡기는 것이요,

    이쯤 되면 승소를 하든 패소를 하든 회복할 수 없는 관계로 접어든 것입니다.

    결국 옳고 그름을 인간을 떠나 법의 심판을 받을 때 모두가 패자가 되고 맙니다.

    키에르케고르의 말대로 인간만이 양심이 있고 조직은 양심이 없기 때문에

    법률과 조직의 기계적 시스템에 인간이 말려들어 갈 때 인간의 의식은 절망하고

    깊은 분열과 미움의 수렁에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양심과 상식이 먹히지 않는 사회는 깊이 위독하고 화석화 된 사회.

    오늘날 국가는 그 옛날 선지자 사무엘이 권력의 폐해를 경계한 대로

    왕권을 대신해서 무소불위의 조직화된 권력을 휘두릅니다.

    생명이 아니라 이성이 없는 조직이 법을 도구로 하여 권력을 행사함으로서

    법의 틀에서 가차 없이 재단하게 됩니다. 특히나 민주주주가 엉성한 사회에서의

    권력은 무전유죄 유전무죄란 말이 생겨날 정도로 적용하는 법의 눈금이 다르니

    오래전 유대 사회의 기득권자들이 가난한 자들이 지킬 수 없는 정결법과 안식일법

    등을 제정하고 국민들을 단죄했던 거나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訟 ’문왕[희창]은 하늘과 물이 험하게 서로 대치하고 있는 형상을 들어

    서둘러 쟁송 爭訟의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 만큼 그 사회가 일그러지고 분쟁이 심한 사회였기 때문일 겁니다.

    인간의 근원적인 탐욕 때문에 화해하지 못하고 서로 다투고 싸우고

    원수 갚는 비참한 현실을 정비하고 경계를 삼기 위함이었을 겁니다.  

 

    송訟과 관련해서 시경 詩經 대아편에 ‘우예질궐성 虞芮質厥成’이라,

    우나라와 예나라가 그 재판을 질정 質定하는 전승이 내려오니.

    ‘우예지송 虞芮之訟’  우虞나라와 예芮나라의 영토 분쟁 송사 訟事 사건 

    문왕聖人의 선정에 살맛이 난 국민들이 서로 참고 겸양하는 장면을 보고

    두 나라의 소송 당사자들이 부끄러워하며 그 소송을 멈췄다는 게 그 요지.

    우虞나라의 옛 성은 산서성 갑륙현 甲陸縣의 동북쪽

    예芮나라의 옛 성은 섬서성 조읍현 朝邑縣의 남쪽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두 나라는 국경을 맞대고 있었는데, 이 국경 지대의 땅을 두고 두 나라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면서 티격태격 할 무렵

    주周나라의 문왕文王이 기산 岐山 아래에서 서쪽 오랑캐를 몰아내고

    선정 善政을 베풀며 나라의 기틀을 다지고 있었습니다.

    우와 예의 임금은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분쟁을 해결할 기미가 없게 되자

    당시 명망 있는 주 문왕에게 가서 결판을 내기로 하고 문왕을 방문하게 됩니다.

    두 왕이 주나라 국경에 들어섰는데, 그 땅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밭고랑을 양보하고, 길 가는 사람들 중에는 젊은 사람은

    어른들에게 천한 사람은 귀한 사람에게 길을 양보하고 있었습니다.

    더 성 안으로 들어가니까 남자는 오른쪽 길로 가고 여자는 왼쪽 길로 가며,

    머리가 흰 노인이 손이나 머리에 물건을 들거나 이고 가는 사람이 없이

    젊은 사람들이 대신해서 들고 짊어지고 이고 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두 임금이 문왕이 다스리는 조정안으로 들자, 희한한 모습을 보게 되는 데

    여러 신하들 중에서 사士는 대부大夫가 되기를 사양하고

    대부는 공경公卿이 되기를 사양하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도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높은 사람이 되려고

    거짓말을 하고 아등바등하는 장면을 보게 되는데,

    자신의 능력의 적음을 알고 높은 벼슬에 오르고 보자는 마음이 없던 겁니다.

    이렇게 국경과 성, 조정에 들어와서 백성들과 벼슬아치들의 자세와 태도를 본

    두 왕은 "아! 우리는 조그만 땅을 두고 다투는 소인배에 불과했구나.

    우리 같은 소인배들이 어찌 군자가 다스리는 땅을 밟을 수 있겠는가?"라며

    회한에 가득 차 결국 그들이 박 터지게 싸우고 다투던 땅을 주인 없는 땅,

    즉 한전 閒田으로 만들어 버리고는 발걸음을 되돌립니다. 
 

    예나이나 지금이나 재산이나 이권을 두고서 국가, 자치단체, 개인 간에

    심지어 부부나 혈육 간에 조차 눈뜨고는 못 볼 송사 訟事가 벌어지곤 합니다.

    그러나 종전에 아무리 원만한 관계였다고 하더라도 어떤 이유로든지

    송사 訟事까지 간다면 대게 그 관계는 파탄 나고 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논하는 시경 詩經의 우예지송 虞芮之訟은

    한 치라도 손해를 안 보려고 격렬하게 다투고 소송을 권하는 현대사회에서

    타산지석 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천수송天水訟' 역易의 송을 들어봅니다.

 

    송 유부 질척 중길 종흉 訟 有孚 窒惕 中吉 終凶

   “송, 강력하구나. 막혀 있고 두렵다. 중의 길함도 끝내 망한다.”

    어둠이 지배하는 공포의 세계, 독재자가 통치하는 사회,

    어둠의 힘이 너무 강렬하여 말을 삼가고 국민들은 두려움에 몸서리를 칩니다.

    그러나 중길 中吉, 한 때나마 큰 소리치고 억누르지만 얼마나 가겠습니까?

    종흉 終凶 종국에는 멸망하고야 말 것입니다. 凶흉한 꼴을 보게 됩니다.

 

    이견대인 불이섭대천 利見大人 不利涉大川

   “큰사람을 봄이 이롭다. 큰 강을 건너는 것은 이로움이 없다.”

    아무리 저 홀로 잘나도 혼자서 해쳐나갈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이 철인이 되던지 철인이 대통령이 되어야지 덜 된 사람의 일은

    하는 일마다 번뇌요 괴로움입니다. 안하는 게 가장 잘 하는 겁니다.

    이견대인 利見大人 혼자 하려 하지 말고 성인의 뜻을 받들어야 합니다.

    불이섭대천 不利涉大川 그 일을 해봤자 이롭지 않아요. 제발 좀 가만히 계세요

    단왈 송 상강하험 험이건송 彖曰 訟 上剛下險 險而健訟

   “송, 위로는 강하고 아래는 험하다. 험하고 강건한 것이 송이다.”

    위로는 제 힘만 믿고 날뛰는 독재자가 있고

    아래로는 그 못된 명령에 따라 허라는 대로 더 하는 못된 깡패들이

    못된 짓을 하고 있습니다. 險而健訟 訟의 모양이 한 없이 포악하고 잔인합니다.

    송 유부 질척 중길 강래이득중야  訟 有孚 窒中吉 剛來易得中也

   “송은 힘이 있고 막혀있고 두려운 것으로서 중이 길하다는 것은

    강하고 못된 것이 와서 권력을 잡았다는 말이다.”

    국민의 소리를 듣고 국민의 뜻을 받들어 국가를 운영하는 것이 아닌

    강자 앞에 약하고 약자 앞에 강한 자가 실권을 잡음으로서 오는 해악害惡.

    힘으로 때려 누르니 한 순간 잘 되는 것 같지만 되는 게 되는 게 아닙니다.

    종흉 송불가성야 終凶 訟不可成也

   “끝까지 이런 식으로 가면 결국은 흉이라 함은 끝내 이뤄질 수 없다는 거다”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이쯤해서 멈추고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모르는 길을 가다가 잘못 왔다고 생각하면 얼른 뒤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오기로 계속 가다간 결국엔 낭패를 보고 맙니다.

    그렇게 하다간 종국엔 흉凶 한 꼴을 봅니다. 不可成也 아무 것도 이룬 것도 없고요. 

    이견대인 상중정야 불이섭대천 입우연야

    利見大人 尙中正也 不利涉大川 入于淵也

    “큰 사람을 만나야 이롭다함은 中正중정을 받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큰 강을 건넘이 이롭지 않음은 건너다 깊은 수렁에 빠진다는 것이다”

    내 실력이 안 되면 서백이 강태공을 찾듯이 실력자를 만나야 합니다.

    무지와 고집으로 밀어붙이다가는 실족하여 깊은 강에 빠지게 됩니다.

    지나치게 모자라거나 치우침이 없는 중정 中正을 숭상하고 따라야 합니다. 
 

    상왈 천여수 위행송 군자 이작사모시 象曰 天與水 違行訟 君子 以作事謨始

   “상왈, 하늘과 물이 어긋나게 행함이 송이니 군자는 이를 보아

    처음 시작할 때 잘 생각해서 일을 개시한다.”

    하늘은 위로 올라가고 물은 자꾸만 아래로 내려가니 서로 싸우게 됩니다.

    그러니 군자는 이를 알고 작사모시 作事謨始 시작할 때 전략을 잘 세워야 합니다.

    계획과 생각이 전혀 다른데 상통하기는 어려운 일

    다만 통하지 않음을 미리 알고 대처 하게 되면 극한 상태로 치닫지 않게 됩니다.

 

    초육은 불영소사 소유언종길 初六 不永所事 小有言終吉

   “일을 길게 끌지 아니하면, 조금 말이 있으나 마침은 길하리라”.

    증오와 번뇌 속에 너무 오래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러다가는 희망이 없습니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한날로 족하니라. 조금 양보하고 서둘러 수습하면 됩니다.

    구이 불극송 귀이포 기읍인삼백호 무생 九二 不克訟 歸而逋 其邑人三百戶 无眚

   “訟송을 이길 수 없으니 돌아와 숨는다. 마을 사람이 삼백호다. 재앙이 없다.”

    불극송 不克訟 소송해서 이길 수 없으니, 깊은 곳에 들어가 마음을 닦습니다.

    말을 들어줄 동무가 있고 가르쳐줄 선생이 있으니 평상심을 찾게 됩니다.”

    육삼 식구덕 정려종길 혹종왕사 무성 六三 食舊德 貞厲終吉 或從王事 無成

   “구덕을 먹고 살며 곧음으로 노력하니 마침내 길하다.

    혹 나라 일에 종사하더라도 자신의 공을 내세움이 없다.”

   ‘식구덕’ 좋은 선생을 만나 말씀으로 살고 받들어 정려하니 어둠에서 벗어납니다.”


    구사 불극송 복종명 투안정길 九四 不克訟 復卽命 渝安貞吉

   “송을 이길 수 없다. 천명을 깨닫고 변화되어야 평안하고 곧게 사니 길하다”

    선생의 말씀으로만 안 되고 견성성불 見性成佛 스스로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정도로 돌아가고 천명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중생하고 확 바뀌어야 합니다.

  

    구오 송 원길 상왈 송원길 이중정야 九五 訟 元吉 象曰 訟 元吉 以中正也

   “송은 어른이 되어야 길하다. 어른이 되어야 길함은 중정이 되라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어야 元吉 원길입니다. 원길은 중정과 통하는 말

    중통 中通 마음 속이 통하고 밖의 세상도 통하니 곧 중정의 세계입니다.

    상구 혹석지반대 종조삼체지 上九 或錫之鞶帶 終朝三褫之

    상왈 이송수복 역부족경야 象曰 以訟受服 亦不足敬也

   “혹 가죽띠를 상으로 받는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빼앗길 수 있다.

    訟 송으로써 관복을 상으로 받을 지라도 좋아할 바가 못 된다.”

    소송에 이겨서 이익을 취한다고 해도 그것이 오래가지 못 합니다.

    설령 소송하여 관직에 오른다고 해도 존경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뜻이죠.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자주 쓰는 용어 가운데 “법대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목적을 이룰 수만 있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생각입니다.

    訟송을 한다고 하는 것은 강이험 剛而險 얼어붙고 험해진 상태를 말하며,

    소송으로 치닫는 사회는 관계가 단절된 난폭한 사회일 수밖에 없습니다.

    주역을 번역한 공자는 논어 안연 편에 송사에 대하여 이르기를

    청송 오유인야 필야사무송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

   “송사에 대해서 듣는 것은 나도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지만,

    반드시 송사가 없어지게 하는 것이 내가 바라는 바이다.”訟을 비판했으며,

    예수님 주변에도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그분을 송사하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은“너를 송사하려는 사람과 법정에 갈 때는 길에서 얼른 그와 타협하라.”

   "송사하여 속옷을 달라고 하는 경우 겉옷까지 벗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자기의 법적인 방법과 권리를 포기하라는 것을 뜻하며

    서로 사과하고 화해하고 송사하지 말 것을 권면하셨습니다.

    바울도 스승의 말씀을 받들어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서로를 소송하기 위해

    법정에 들락거리지 말라고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통하지 않고, 다른 주장만을 내세우려 한다는 것은

    결국 영적으로 패배했다는 겁니다. 나아가 바울은 이 송사에 대하여

   “여러분이 서로 법정에 고소한다는 것은 벌써 여러분이 완전히 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차라리 억울한 일을 그대로 당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또 사기를 그대로 당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왜 그렇게 하지 못합니까?”<고전 6:7>

    서로 정죄하지 말고 송사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험이건 險而健’ 험한 가운데 세계 몰아붙이니까 더욱 난폭해집니다.

    고소를 하면 맞고소를 하고 서로 죽기 살기로 끝장을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소송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요‘소송 3년이면 기둥뿌리 빠진다.’

    우수개 소리로 소송 당사자들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천수송 天水訟”억울하고 분노가 치밀어 정신이 아찔해질 때, 訟하지 않고

   ‘중통외직 中通外直 마음은 언제나 뚫리고 몸은 언제나 곧아야 한다’

   ‘오지심정즉 천지심역정 吾之心正卽 天之心亦正’

   “내 마음이 바르고 곧으면 하늘의 마음 또한 바르고 곧다.”

   '중정 中正'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자신으로 돌아오면 복되다는 것이

    易 역의 여섯 번째 “천수송 天水訟”의 지혜입니다.


                                         s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