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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그리우스 - 자료

2010.07.30 06:26

물님 조회 수:20155

@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는  4세기 영성 수행의  규범이 되는 인물이며

    그의 로기스모이(인간 내면의 어둠)에 대한 가르침은 현대 에니어그램의 영성을 논하는 데 있어서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에바그리우스

 

‘사막의 철학자’…영적 여정 가르침 전수

에바그리우스

저술의 많은 부분을

구성하는 ‘단장’(短章)은

사막 수행 전통과

그리스 철학을 결합하는

휼륭한 도구가 됐다

 

삼위일체 교의 형성 공헌

에바그리우스는 345년 경 흑해 연안 폰투스에서 태어났다. 바실리우스에게 독서직을 받고, 그후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우스의 제자가 되어 그에게 부제품을 받았다. 381년 그레고리우스와 함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 참석하여 삼위일체 교의의 형성에 공헌하였다. 이때 주교의 요청으로 그는 콘스탄티노플에 머물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곳 고위 관료의 부인과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 위태로운 로맨스를 계기로 유능한 신학자요 전도양양한 성직자이던 그의 인생은 극적인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상황 한 가운데에서,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콘스탄티노플을 떠나 수행의 생활로 접어들었던 것이다(팔라디우스, 「라우수스 역사」 8). 우선 예루살렘에 있던 멜라니아와 루피누스의 수도원으로 갔던 그는 멜라니아의 영향으로 결국 383년 이집트의 사막에 정착하였다. 그리하여 나머지 인생을 수도승으로 살았다.

그는 이전부터 사막에서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던 수도승 전통과 그리스 철학의 전통을 통합하여 독특한 자기만의 스타일로 많은 저술을 남겼다. 저술의 많은 부분을 구성하는 「단장(短章)」은, 스승의 「한 말씀」에 의존하는 사막 수행 전통과 세련된 그리스 철학을 결합하는 훌륭한 도구가 되어 주었다. 후에 「사막의 철학자」란 별명으로 불린 그는 불행히도 사후 오리게네스 논쟁에 연루되어 단죄를 받았다.

그러나 기도와 영적 여정에 관한 그의 가르침은 이후 동서방 교회의 수도승 전통과 신비주의 전통에 결코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겨 놓았다.

에바그리우스는 영성 생활의 여정을 크게 「수행(修行)」(praktike)과 「영지(靈智)」(gnostike) 둘로 나눈다. 더 흔한 표현으로, 앞의 것은 「활동」에 해당하고 뒤의 것은 「관상」에 해당한다. 수행은 육체에서 오는 정념(情念, pathos)의 정화(淨化)를 목적으로 한다. 즉 영혼을 어지럽히는 내적 세력 내지 소음들, 혹은 그것들의 원인이 되는(더 현대적인 표현으로는 그것들의 인격화인) 「마귀」들과 벌이는 영적 투쟁의 여정이 바로 수행이다.

에바그리우스는 이 여정에서 하느님을 찾는 사람이 대면하게 되는 여러 가지 내면의 충동들을 분석하고 그 메카니즘을 묘사하는 데에 놀라운 수완을 발휘하였다. 그는 사람을 괴롭히는 내면의 모든 세력들을 「여덟 가지 악한 생각」으로 요약한다. 순서대로 설명하자면 이렇다.

수행자가 사막에서 제일 먼저 마주치는 내면의 적은 「탐식」이다. 그 다음으로는 「성적 탐닉」이며, 「소유욕」(혹은 인색)이 그 뒤를 잇는다. 이 세 가지는 한 마디로 육신을 지닌 모든 존재가 기본적으로 지니는 욕망이로되, 사막의 상황에서 극단적으로 증폭되어 사람을 괴롭히는 세력들이다.

다음으로 오는 것은 「슬픔」이다. 이것은 앞의 욕망들을 채우지 못하는 데서 오는 좌절감이나 무력감과 관계가 깊다. 또한 많은 경우 자기에게 없는 것을 지닌 타인들과 스스로를 비교하는 데서 생긴다. 그래서 이 「슬픔」이라는 동전의 뒷면은 바로 「시기 질투」가 된다.

그 다음은 「분노」이다. 욕망들을 원하는 대로 채우지 못할 때, 슬픔의 시기가 지나면 분노가 치밀게 되어 있다. 그 뒤를 잇는 것이 유명한 「아케디아」인데, 현대어로는 사실상 번역이 불가능한 단어이다. 이것은 권태, 절망, 무기력, 우울 등의 심리적 위기 상태를 다 포함하며, 사람을 자살로 이끌기도 하는 치명적 힘이다.

‘아케디아’가 큰 적

에바그리우스는 아케디아를 은수자들의 가장 큰 적으로 꼽으면서, 태양이 머리 바로 위에 걸리는 정오 무렵에 그 병증이 가장 심각해진다고 해서 「정오의 마귀」라고 일컫는다. 그의 묘사에 따르면, 아케디아에 시달리는 수도승은 자기 암자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자주 해시계를 쳐다보며(시간이 너무 느리게 간다고 느낌), 혹시 손님이라도 찾아와 주지 않나 하는 바람으로 봉창을 열어 수시로 밖을 쳐다본다. 몸은 독방에 있어도 마음은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상태라는 것이다.

다음에 오는 것이 「허영」 혹은 공명심이다. 이것은 자기의 역할이나 기능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믿게 하여, 타인의 인정과 긍정적 평가에 악착같이 집착하며 언제나 좋은 인상으로 각인되고자 전전긍긍하게 한다. 마지막은 「교만」으로서, 자기를 모든 이의 위에, 그리고 온 세상의 중심에 놓는다. 그래서 늘 남을 콘트롤하고 지시하며 가르쳐야만 직성이 풀리는데, 이로써 결국 자기를 하느님의 자리에 갖다놓게 되는 것이다. 이 「여덟 가지 악한 생각」에 관한 그의 가르침은 후대에 요한 카시아누스를 거쳐 「7죄종」의 교리로 정착하여 오늘까지 전해져온다.

내적 자유

악한 생각들과의 영적 투쟁인 이 수행 단계의 말미에 도달하게 되는 지점을 에바그리우스는 「아파테이아」(내적 자유)라 일컫는다. 이것은 내면의 애착이나 충동들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로서, 여기서 참된 「사랑」(아가페)의 능력이 비로소 꽃피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영적 생활의 두 번째 단계, 곧 「영지(靈智)」가 시작되는 출발점이다.

깨끗해진 마음의 눈을 지녔기에, 이제 도처에서 하느님을 뵈옵게 되는 관상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 영지 혹은 관상의 여정은 자연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감지하는 단계(physike)를 지나, 삼위일체 신비의 한 복판에서 벌거벗은 신성을 직접 뵈옵는 단계로 나아간다고 한다. 이 마지막 단계를 그는 「테올로기케」라 불렀다.

이처럼 에바그리우스에게 「신학」(theologia)은 책상머리에서 학자들이나 하는 지성적 작업을 훨씬 뛰어넘어, 영적 생활의 최심부(最深部)에 자리잡은 것이었다.

그가 남긴 한 단장은 천 육백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다가온다. 『그대가 신학자라면, 그대는 정녕 기도할 것이다. 그대가 정녕 기도하고 있다면, 그대는 신학자이다』(「기도」 61).

 

고성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원 원장

이연학 신부

 

 

폰투스의 에바그리우스

 

 

에바그리스우스는 이집트 수도원 역사의 전성시대에 이집트의 사막에서 16년 동안 은수자의 삶을 살았다. 그의 저술은 다름아닌 이 사막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오리게네스와 마찬가지로 에바그리우스도 영혼이 나아가는 길을 세 단계로 나누었다.

그러나 윤리학, 자연학, 형이상학 대신에 그는 실천학praktike, 자연학physike, 신학theologia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실천학에서 영혼은 덕을 쌓는다. 이 단계에서 영혼은 "아파테이아(apatheia. 평온),"

즉 글자 그대로 무無감정, 정념에서 해방된 상태에 이른다.

평온은 사랑agape을 위한 필요조건이며 사랑은 참된 실천학의 목표이다.

에바그리우스에게 있어 평온은 정녕,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건강한 영혼의 상태를 말한다.

실천학은 그러므로 평온에 이르는 길이다. 이 길은 믿음pistis으로 시작된다.

실천학의 첫 단계는 고독과 침묵 속으로 물러가 그 가운데서 악마와 맞부딪쳐 싸우는 일이다.

이는 실제로 죄악에 맞선 싸움이라기보다는 죄를 짓게 하는 유혹, 생각, 상상, 사념

(이 모두가 그리스말 로기스모스logismos(생각)에 포함되는 개념)에 대항하는 싸움이다.

이는 훨씬 힘든 싸움이다.

영혼이 바야흐로 평온에 거의 이르렀음은, 영혼이 산만해지지 않고 기도할 수 있을 때,

기도하는 동안에 일어나는 세상만사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된 때 자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혼이 "아파테이아"에 이르면 "누스nous"는 스스로를 인식하여

자기의 빛과 능력을 알게 됨으로써 "theoria(관상)"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실제로 정신은 하느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길에서 두번째 단계,

에바그리우스가 자연학이라 부르는, 자연을 관상하는 단계로 들어서는 것이다.

평온에 이른 영혼은 자연만물의 질서 자체를 관상하는 것으로 시작하여(제 2의 자연관상)

다음으로는 이를 넘어 자연질서의 배후에 깔린 원리들을 깨닫게 된다.(제 1의 자연관상)

제 2의 자연관상에서 중요한 것은 관상 그 자체, 즉 관상하는 행위인 것이다.

제 1의 관상에서 영혼은 자신이 정신에 속해 있음을, 즉 정신의 결합체의 한 구성원임을 깨닫게 된다.

이 단계마저 초월한 곳이 신학의 영역이다.

"끝없는 무지" 이는 바로 "거룩한 삼위일체"를 관상하는 신학의 영역이다.

정신은 삼위일체를 관상하는 신학을 통하여 스스로 관상하는 대상과 하나가 된다.

그러나 이는 오리게네스와 같이 끊임없이 지식을 얻으려는 무지일 뿐,

그레고리오나 디오니시우스에게서와 같이 근본적인 "알 수 없음"과는 다른 것이다.

 

신학은 기도하는 세계이다. 그는 기도함이야말로 정신의 본성이라고 한다.

영혼은 기도함으로써 nous였던 본래의 상태를 되찾게 된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정신적 소통이며 하느님께서 친히 영혼의 수준으로 내려오심으로써 이루어진다.

영혼은 타락한 정신이기에 영혼이 정신으로서 그 본연의 활동을 되찾게 되는 것은 기도를 통해서이다.

현세를 살면서 영혼이 이런 상태를 경험하는 것은 그저 잠시 동안일 뿐,

육신에서 분리되어 육신을 벗은 정신이라야만 순수하고 비물질적 기도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기도할 때 완전한 무형(無形)의 경지에 도달한 정신은 행복하다.

산만하게 흐트러지지 않은 기도 속에서 하느님을 끊임없이 더욱 그리워하는 소망을

부여받은 정신은 행복하다.

기도할 때 비물질적인 상태가 되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난 정신은 행복하다.

기도할 때 완전한 무감정이 상태를 지닌 정신은 행복하다.

 

이처럼 기도하는 법을 익혀나가는 사람이 수도승이다.

수도승은 욕망과 정념에서 벗어나 천사와 같은 상태에 이르러, 자신이 세상과 가까이 있는

존재임을 깨닫고 세상에 묶여 있는 사람보다 더 효과있게 세상을 도울 수 있게 된다.

 

모든 사람을 하느님과 같은 눈길로 보며 하느님을 본받아 그들을 생각하는 수도승은 행복하다.

모든 사람의 구원과 진보를 지켜보며 자기의 일인 듯 마냥 기뻐하는 수도승은 행복하다.

자기자신을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아무것도 아닌 허접쓰레기라고 생각하는 수도승은 행복하다.

수도승은 모든 이에게서 떨어져 있으면서도 모든 이와 결합되어 있다.

수도승은 자기자신을 모든 이와 함께 있는 자라고 생각하는 바,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끊임없이 나타나는 자기자신을 보기 때문이다.

 

정신은 신비적 상승의 정상에 이르렀을 때 자기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참된 활동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그리하여

오직 정신으로서의 기능을 올곧게 실행하면서 하느님을 관상하고 하느님을 알게 되는 것이며,

정신은 이와같이 하느님을 알기 위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